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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빨리빨리' 정신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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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wonseok.ko@leeko.com >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빨리빨리 정신은 분명 한국의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한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멀리 내다보지 못하게 하고 대충대충 임시방편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부정적 기능도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법과 정책에서도 그런 양면성이 있다. 빈번하게 바뀌는 정책은 여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현행 법령은 4600건 정도다. 그런데 지난 5년간 개정·공포된 법령 숫자가 매년 2000~2500건에 달했다. 우리나라 전체 법제도의 40~50% 정도는 비록 소소한 부분이라도 매년 바뀐다는 뜻이다. 공정거래법 하나만 봐도 2012년 이후 14차례나 개정됐다.

주요 정책 변화와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것이 대학입시제도다. 대학입시는 1945년 이후 큰 변화만 16번 겪었다. 올해로 도입 23년차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7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잦은 제도 변경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수험생이나 학부모, 교사에게 만족스러운 변화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부동산정책 역시 그렇다. 경기 흐름을 주도하고 충격을 완화하기보다 억제와 부양책을 오가며 변동폭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섣부른 개입을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로 비판했다. 정책의 조변석개를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이 나오자 더운물 쪽으로 꼭지를 돌렸다가 이번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자 다시 찬물 쪽으로 꼭지를 돌리는 일을 반복하는 샤워실의 바보에 비유한 것이다.

사회적 비용만 키우고 최적의 결과에서는 멀어지는 결과를 피하려면 신중하게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일단 정해진 내용은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일반 국민이나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정책을 믿고 행동할 수 있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넛지 효과’를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인 넛지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선스타인 교수를 관리예산처(OMB) 정보규제관리실장으로 임명하고 정부 정책을 명확하고 간명하게 제시하는 일을 맡기기도 했다.

법제도와 정책은 신중하고 명확하게 수립해야 한다. 5년, 10년 이상 유지해 국민이 예견할 수 있게 하고, 국민 신뢰와 기대를 얻었으면 한다. 빈번히 내용을 바꾸는 것보다는 넛지 효과의 지혜로 오래가고 신뢰할 수 있는 법과 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고원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wonseok.ko@leek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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