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주의' 화두 던진 문재인 대통령
지도자의 의지 강조한'경제민주화'와 다른 개념
부의 양극화가 제도적 민주주의 위협
최저임금·비정규직 문제에 집중 의지 "누구나 8시간 일하면 먹고사는 걱정 없어야"
[ 조미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제시한 ‘경제민주주의’ 화두에 새 정부의 경제정책 철학과 구체적인 방향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청와대 참모들이 11일 전했다. 문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앞두고 자신의 경제구상을 신동호 연설비서관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연설문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민주주의는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이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양극화가 민주주의 위협
문 대통령은 양극화가 경제적 불안 요인을 넘어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노사 간 갈등의 골이 깊었지만 지금은 비정규직 대 정규직 등 ‘노노 갈등’도 극심하다. 기업에서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경제 분야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정치 영역에서 의사 결정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연설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일자리 위기’를 꼽았다. 소득재분배(복지)가 부족하다고 봤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다른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사람이 먼저다》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논하면서 “애초에 시장에서 지나치게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자리는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양극화의 해법이자 예방책이다. 문 대통령이 △공공 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임기 내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달성 △근로시간 단축 등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약속한 배경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시한 ‘경제민주화’와도 차별된다. 경제민주화는 헌법 제19조 2항에 명시된 개념이다. 공정한 기회와 불평등 완화가 핵심이다. 2012년 대선에서 김 전 대표가 구체화하면서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문 대통령 역시 대선후보 시절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저서에서 “경제민주화의 진정한 목적은 경제의 활력을 되찾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며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신념’을 강조한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경제 주체들의 타협과 양보가 절실하다고 봤다. 예컨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최저임금 인상을 공론화하자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영세 중소기업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언급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관건”이라며 “대통령이 이번 연설을 통해 경제민주주의 개념을 바로잡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문재인 버전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외환위기 타개책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했다. 사용자 측의 고용 유연성 제고를 위한 정리해고 도입과 노동자 측의 노동 기본권 확대를 골자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했다.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 것도 이때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 시민단체를 포함한 ‘노·사·민·정 대타협’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다”며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하나가 아니라 모두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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