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증언 '파문'
"플린은 좋은 사람…그를 놔주길 바란다"
"FBI국장 계속 하고 싶나, 나는 충성 원해"
9차례 접촉서 받은 노골적 외압 폭로
탄핵정국 급물살 타나…백악관 "수사 대상 아닌 것 확인돼"
'마이웨이' 트럼프, 국정 지지율 추락…민주당은 탄핵소추 준비 착수
[ 박수진 기자 ] “대통령은 충성을 요구했고, 나는 움직이지도 답하지도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침묵 속에 쳐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달 9일 해임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생생한 발언이 나왔다.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을 통해서다. 증언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곧바로 대통령 탄핵 절차로 이어질 수 있는 ‘메가톤급 폭탄발언’이다. 그러나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아 지루한 정치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9회 중 5회분만 공개
코미 전 국장은 8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지난 1월6일부터 4월11일까지 대면으로 3회, 전화통화로 6회 등 9회에 걸쳐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 중 대면 3회, 전화통화 2회분을 공개했다. 추가 폭로로 이어질 여지를 남겼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과 충성 맹세 요구 등 시중에 돌고 있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날짜별로 대화 내용과 분위기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고 밝혔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수사 중단 압력에 관한 증언이다. 코미 전 국장은 2월14일 백악관 브리핑 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혼자 남게 하고선 “마이클 플린(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좋은 사람이고 러시아인들과의 통화에서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며 “나는 당신이 이 일에서 손을 떼고, 그를 놔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운명의 1월27일 만남
코미 전 국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FBI 국장 자리를 빌미로 자신을 매수(후원관계 정립)하고 충성 맹세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1월27일 백악관으로 자신을 불러 만찬을 하면서 “FBI 국장을 계속하고 싶은가.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10년 임기를 채우기를 원한다”고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충성이 필요하다. 충성을 기대한다”고 요구했다는 것.
코미 전 국장은 그 같은 발언에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얼굴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 간 돌아올 수 없는 관계를 결정지은 순간으로 보인다. 코미 전 국장은 이후 102일 만에 해임됐다. 그는 자신이 플린에 대한 트럼프의 수사 중단 요구, 자신의 수사 대상 불포함 사실을 발표해달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묵살 또는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만찬 전까지만 해도 코미 전 국장이 더 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으며 대통령에게 외설스런, 미확인 자료의 존재 사실을 알려줬다고 밝혔다. 외설스런 자료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3년 모스크바의 한 호텔방에서 러시아 매춘부와 함께 있었다는 내용을 담은 영국 정보요원의 메모다.
◆“탄핵소추감” vs “무죄입증 환영”
증언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를 확인해주는 증언이라며 탄핵소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백악관 측은 “코미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확인해준 것에 기쁘게 생각한다”며 “대통령은 무죄가 입증된 만큼 그의 의제들에 계속 집중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미 언론들은 탄핵 가능성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을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다”(워싱턴포스트)고 보도했다.
미국 퀴니피액대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6일까지 벌인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34%를 기록했다. 이 대학이 그동안 조사한 결과 중 최저치였던 4월 수치(35%)보다 낮다. 응답자 중 40%는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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