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 새 소설 '시대의 소음'
[ 심성미 기자 ]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는 평가와 함께 공산주의 독재정권에 영합한 어용 음악가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사진)는 5년 만의 신작 《시대의 소음》(다산책방)에서 실존인물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쇼스타코비치의 팬인 반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전기 작가에게 작곡가의 삶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 틈을 채울 수 있는 소설가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신작의 주인공으로 쇼스타코비치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반스는 쇼스타코비치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암흑의 시대를 극적으로 살아낸 거장의 내면으로 들어가 거대한 권력 앞에 선 힘 없는 인간의 삶을 내밀하게 그린다.
작가는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웠던 세 장면(1936, 1948, 1960년)을 포착해 세 장으로 나눠 썼다. 소설의 1장은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2장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3장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장은 19세에 쓴 첫 교향곡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지만 스탈린 앞에서 연주하다 저지른 실수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다. 쇼스타코비치는 작은 여행가방을 들고 집 앞 승강기 옆에서 밤을 새운다. 끌려가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 스탈린 시대 러시아에서는 “겁에 질린 채 살아 있는 작곡가와 죽은 작곡가들”만 있었다. 2장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문화, 과학, 세계평화회의에 소련 대표단으로 참석해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 비판한다. 3장에선 거부하려 애썼지만 끝내 대숙청의 장본인인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적 항변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5번에 대해 권력층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종결부의 끽끽거리는 아이러니와 조롱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작가가 쇼스타코비치를 바라보는 시선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은 용기를 모두 자기 음악에, 비겁함은 자신의 삶에 쏟았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끝까지 놓지 않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은 갈등과 번뇌 그 자체였다. 노년이 된 쇼스타코비치는 독백한다. “젊은 시절 가장 경멸했을 모습으로 늙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쇼스타코비치가 권력층으로부터 숱하게 들어야 했던 “음악은 누구의 것이냐”라는 질문에 작가는 소설 말머리에서 스스로 답한다. “음악은 결국 음악의 것이다”라고. 역사의 시끄러운 소음 아래 용기와 비겁함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인간을 시적으로 탁월하게 그려냈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 전까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던 한국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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