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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교실' 수업에 융합교육 꿈 못꿔…1980년대로 후퇴한 한국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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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동결 7년의 그늘

'돈 가뭄' 시달리는 대학들
등록금 반강제 동결 이후 대학경쟁력 지수 급락
'반값 등록금' 서울시립대, 대형강의 5년새 두 배 늘어
미국, 15년 전 도입한 CT수업 한국선 돈 없어 엄두 못내

"미슐랭 식당 만들라면서 음식값은 내리라는 꼴"
총장들 '반값 등록금' 쓴소리



[ 박동휘/성수영/구은서 기자 ]
연세대는 지난해 ‘CT(computational thinking·컴퓨터적 사고)’ 교육을 도입하려다 그만뒀다. 학과 간 칸막이를 깨기 어려운 데다 해외에서 전문가를 데려와야 하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CT란 ‘ABM(인공지능,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교육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실생활의 문제를 컴퓨터적 사고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다. 미국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스탠퍼드대를 비롯해 주요 대학에 필수 과목으로 도입됐다.

7년째 이어진 ‘돈 가뭄’은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돈 드는 토론형 수업 대신 ‘가성비’ 좋은 ‘쌍팔년도’식 대형 강의가 늘어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지방대에선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교내 전기가 밤 10시면 자동으로 꺼질 정도다. 밤새워 연구하고, 창업에 몰두하려면 대학 근처 카페를 전전해야 한다.

등록금 사실상 인하

올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39만7000원이다. 2012년과 비교해 약 2만원 내렸다. 연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마이너스 폭은 더 크다. 대학들이 등록금 동결이 아니라 인하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반강제적인 동결이 시작된 2011년을 기점으로 대학 경쟁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육경쟁력 분석에 따르면 2008년 4위(100분위 환산 기준)에서 34위(2011년)까지 상승했던 대학경쟁력 지수는 지난해 10위로 추락했다.

현장의 체감도는 더욱 심각하다. 문봉희 숙명여대 기획처장은 “매년 지출해야 할 건물 감가상각비도 교비 회계에 적립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 재정이 위험 수준에 들어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몇 년 안에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대형 강의실에 학생들을 몰아넣는 ‘콩나물 수업’이 늘고 있는 것도 ‘대학 붕괴’의 전조다. 서울시립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수강 인원이 101명 이상인 대형 강의가 2011년엔 55개였지만 2014년 113개로 급증했다. 작년에도 112개였다. 이로 인해 서울시립대는 ‘101명 이상 강좌 개설 비율 2.5%’라는 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기관평가 인증기준을 2013년 2학기부터 못 지키고 있다. 서울시립대는 서울시의 예산 지원으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한 대학이다.

“돈 드는 연구는 엄두도 못 내”

4차 산업혁명 전사를 길러내기 위한 경쟁력 강화는 남의 일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의 창업지원을 위해 학생들을 만나보면 지방대에선 밤새워 작업할 만한 공간조차 없다고 호소한다”며 “부산대조차 밤이 되면 전기가 모두 꺼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융합교육을 위해 ‘팀 티칭’이란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전 강의에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놨지만 예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세종대는 한 학과에서 열 수 있는 강좌 수를 아예 제한해버렸다. 엄종화 세종대 교무처장은 “새로운 강의 시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등록금 수입 중 70~80%를 인건비, 시설 유지 등 경상비용으로 써야 한다는 게 대학들의 호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들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따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서강대 컴퓨터공학과가 얼마 전 조교 임금체불로 홍역을 치른 일은 이 같은 사정을 잘 보여준다. 교육부 지원사업으로 CT 수업을 시작했는데 정부 지원금이 4월에 들어오는 바람에 임금 지급이 몇 달 늦어져 벌어진 일이다. 서강대 관계자는 “5월 초에 일괄 지급했다”면서 “학교에 돈이 너무 없다 보니 모든 걸 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구지원팀을 없애고 재정지원사업팀을 확대하는 대학이 나올 정도다. 한 사립대 총장은 “연구중심, 산학협력 등 무언가 목표를 정해놓고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학교에 돈이 없다 보니 정부 지원사업에 닥치는 대로 응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7년째 겪고 있는 대학들의 ‘보릿고개’에 주요 사립대 총장들은 “국가의 미래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미슐랭 식당을 만들라고 주문하면서 음식값은 내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경쟁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야 할 대학이 ‘무기’도 없이 전쟁에 나서는 상황이라는 게 총장들의 우려다. 일본만 해도 2013년까지 100만엔 수준으로 유지되던 사립대(이공계)의 연간 등록금이 올해 114만엔으로 4년 만에 14%가량 올랐다. 국공립대는 2004년부터 등록금 동결 정책을 유지해왔지만 사립대 등록금에 대해선 학교 재량에 맡기는 구조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 경쟁이 치열해진 시점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은 “외국과 비교하면 한숨만 나온다”면서 “등록금 동결이 되돌릴 수 없는 국민 정서로 굳어진 만큼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소속 총장들은 올 1월 ‘고등교육의 위기극복과 정상화를 위한 건의’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사립대학 지원을 위한 특별법’(가칭)을 제정해 정부가 사립대의 경상운영비를 지원해주고, 시장경쟁에 기초한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하라는 게 골자다.

등록금 동결을 촉발한 ‘주범’인 반값등록금 정책에도 총장들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정부 차원에서 반값등록금이라는 말 자체부터 폐기해야 한다”며 “반값이란 말을 고집할 거면 차라리 교육비환원율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했다. 교육비환원율이란 낸 돈에 비해 얼마나 많은 교육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면 돈 낸 만큼의 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다. 염 총장은 “서울 주요 사립대의 교육비환원율은 300%에 가깝다”며 “이미 반값등록금을 실현한 셈”이라고 밀했다.

박동휘/성수영/구은서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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