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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무상(無償)과 반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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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순 기자 ] 아메리칸항공이 1981년 5월1일 고객 마일리지제도를 시작한 것은 IBM과 손잡고 예약시스템을 전산화했기에 가능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1주일 만에 같은 서비스를 도입한 걸 보면 항공업계가 이 제도를 승객유치에 얼마나 큰 변수로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일리지제도는 아메리칸항공에서 시작됐다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위키피디아에선 다르게 나온다. 휴스턴 기반의 지방 항공사로 뒤에 콘티넨털에 합병된 ‘텍사스국제항공’이 1979년에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마일리지는 현대의 소비에서 통용되지 않는 부문이 별로 없을 만큼 보편화됐다. 새 고객 유치, 단골 늘리기 등을 위한 마케팅은 마일리지를 빼고는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고객 확보 이면에는 ‘마일리지 부채’도 있다. 마일리지라는 변형된 할인 판매 대가로 갚아야 할 부담이 대한항공의 경우 조(兆) 단위에 달한다.

다소간의 리스크에도 마일리지 마케팅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할인에 맛들인 소비자 행태가 쉽게 변하기는 어렵다. 고정고객으로 잡을 수 있다면 할인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땡처리까지 불사하는 게 판매자다. ‘buy one, get one free(하나 사면 하나는 공짜)’도 미국 가게만의 구호는 아니다. 하나 가격에 두 개를 주는 반값 판매는 국내 편의점에서도 일상적이다.

마일리지든 ‘1+1’의 반값이든 판매자 스스로의 가격 결정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소비자를 즐겁게 하는 경쟁의 힘이요, 시장의 역동성이다.

문제는 억지 반값, 강요된 할인, 제3자가 정하는 가격이다. 이미 반값인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아예 없애겠다는 포퓰리즘 논의가 나왔을 때 정작 반대한 것은 이 대학 학생들이었다. 강의 질(質)은 질대로 떨어지고, 경로만 달랐을 뿐 결국 들어갈 비용은 다 들어가더라는 냉정한 판단에서였다. 이명박 정부 때 등장한 알뜰주유소나 ‘착한 가격업소’가 실패한 것도 관(官) 주도 가격의 필연적 수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는 국가 책임’ 발언으로 반값 치료비라는 말이 나왔다. 치매환자 본인 부담률을 10% 이하로 낮추겠다고 한 것을 언론이 그렇게 표현했다. 반값 치료의 대상은 공감이 갈 만하다. 집안에 치매환자라도 있으면 이 질환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고 가정까지 풍비박산 내는지 절감하게 된다. 개인에게 맡겨두기엔 너무도 버겁다. 문제는 비용이다. 공급자 자율로 정하는 반값이 아니라면 누군가, 언젠가는 나머지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결국 세금 아니면 준조세다. 급식, 교복, 보육비 등으로 선거철마다 부풀려진 ‘무상시리즈’를 경계하는 이유도 그렇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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