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 에드워드 왕 지음 / 김병순 옮김 / 따비 / 416쪽 / 2만2000원
[ 마지혜 기자 ] 생활 속에서 익숙하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생각하기 쉬운 것들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매일 밥상에서 으레 숟가락 옆에 놓여 있는 젓가락이 그렇다. 외국 여행 중 젓가락이 없어 포크로 어설프게 국수 면발을 들어올려야 할 때 젓가락의 가치를 드디어 깨닫는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가 젓가락을 전방위로 연구해 책으로 펴냈다. 미국 로완대 역사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왕의 신작 《젓가락》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역사를 비교하고 전통과 현대의 상호작용을 교차문화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학자다.
젓가락의 기원과 사용 변천 과정에서부터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 젓가락 문화권의 젓가락 사용 양상과 관련 예절, 젓가락이 갖는 상징,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관련된 환경 이슈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했다. 영어로 쓰인 최초의 젓가락 연구서이자 한국에서 출간된 첫 젓가락 역사문화서다.
젓가락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저자는 춥고 건조한 날씨로 음식을 뜨겁게 끓여 먹는 것을 선호한 중국인의 음식문화가 젓가락을 탄생시켰다고 썼다. 고깃덩이를 불에 구워 식탁 위에서 잘라 먹는 서양인에게는 포크와 나이프가 필요했다. 반면 고기와 채소를 미리 잘게 자른 뒤 국물과 함께 끓여 건져 먹는 식문화에는 젓가락이 필요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주된 식사도구는 숟가락이었다. 전국시대 중국인들은 쌀이 아니라 기장을 찌거나 끓인 형태의 밥을 먹었다. 이런 밥을 먹는 데는 숟가락이 유용했다. 점착성이 강한 쌀로 밥을 지으면서부터 젓가락 사용이 늘어났다. 그러다 면발을 집어올려야 하는 국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젓가락은 숟가락과의 경합에서 ‘완승’을 거뒀다.
나라별 식사 방식에 따라 젓가락의 길이와 젓가락 놓는 위치가 다르다는 저자의 관찰도 흥미롭다. 한 상에 여러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먹는 공동 식사 문화를 가진 한국과 중국은 젓가락의 길이가 평균 25㎝ 수준으로 길다. 상 위에 놓을 때는 식탁 가운데 있는 음식들을 향해 세로로 놓는다. 하지만 개별 식사 방식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젓가락 길이가 짧고 가로로 놓는다.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젓가락 문화권 유적지에서 발굴된 화석과 벽화 등 고고학 유물 등을 두루 살폈다. 한·중·일의 고전 문헌과 문집, 현대 논문 등의 자료도 참고했다. 그는 “젓가락과 젓가락질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하나의 살아 있는 전통이 됐다. 이 전통은 그 자체로 생명을 유지하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라는 말로 젓가락 지적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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