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최전선' 홍콩 올드타운을 가다
주윤발도 어린 시절 먹어봤겠지 계란빵도, 어묵튀김도…
홍콩을 굳이 사진으로 비유하면 흑백 사진 같다. 빛과 어두움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곳. 센트럴이나 소호 지역의 마천루조차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현대식 건물 사이로 노후된 건물들이 그림자처럼 놓여 있다. 홍콩의 중심가인 ‘성완’과 ‘센트럴’ 사이를 아우르는 올드타운에서 짧은 여행을 했다. 할리우드 로드를 중심으로 남쪽의 소호(Soho), 북쪽의 노호(Noho), 서쪽의 포호(Poho)는 홍콩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거리는 온통 트렌디한 카페와 편집숍, 갤러리가 밀집돼 있고 다국적 사람들이 스쳐가는 뒷골목은 홍콩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트렌드한 패션의 거리 소호
소호는 사우스 오브 할리우드(South of Hollywood)의 약자다. 할리우드 로드에서 남쪽을 따라 이어진 패션과 트렌드의 거리다. 언덕이 많은 홍콩에서 소호를 좀 더 편하게 가기 위해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이전부터 홍콩의 부자들은 습하고 더운 기후를 피해 서늘한 고지대에 저택을 지은 반면 젊은 상류층은 고지대 바로 아래 산등성이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 주로 살았다. 높은 아파트 건물이 즐비한 그 일대에 ‘중간 지대’, 즉 미드 레벨(Mid-Level)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미드 레벨 지역의 대표적 랜드마크는 단연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길이 800m의 야외 에스컬레이터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홍콩에서보다 영화에서 먼저 봤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임청하가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랑하는 남자 양조위의 아파트 내부를 기웃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영화를 본 관광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임청하가 묘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던 장면을 흉내냈다고 한다. ‘다크나이트’에서 크리스찬 베일과 모건 프리먼이 대화를 나누던 곳도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다. 퀸스 로드에서 소호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한 거리까지 12번의 에스컬레이터가 끝날 듯 말 듯 연결된다. 바닥에서 끝까지 이동 시간만 20여 분이나 걸린다.
홍콩 신진 예술가들의 집합소이자 소호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 피엠큐(PMQ)다. 피엠큐는 원래 19세기 말에 지어져 기혼 경찰의 기숙사로 사용된 낡은 건물이었다. 경찰 인력 충원 및 사기 진작을 위해 세워진 이 건물은 젊은 예술가들이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임대료를 싸게 지원해주고 있다. 피엠큐에는 미술품, 옷, 액세서리 등은 물론이고 전통 과자점, 현지 음식점 등 홍콩의 문화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갤러리와 디자인 숍 등이 들어서며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피엠큐 안에는 100개가 넘는 다양한 숍이 입주해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숍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티셔츠부터 액세서리, 욕실 용품까지 볼거리가 너무도 많아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다.
홍콩의 가로수길 포호 골목여행
예전에 가장 트렌디한 거리를 꼽으라면 소호를 1순위로 꼽았지만 요즘 관광객이 가장 사랑하는 거리는 ‘포호’다. 한국 관광객들은 포호를 가리켜 ‘홍콩의 가로수길’이라고 부른다. 언덕 위쪽에 있는 포힝퐁(Po Hing Fong) 거리를 중심으로 한 포호는 주위에 ‘포’로 시작하는 작은 골목이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 골목은 모두 언덕을 향하고 있다. 골목 중간마다 작은 숍들이 들어차 있고 언덕 끝에는 독특한 상점이 모여 있다.
20년 전만 해도 포호는 인쇄소가 모여 있는 거리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인쇄소가 문을 닫고 그 자리를 홍콩 로컬 브랜드나 디자이너 상품을 모아 놓은 상점이 채우기 시작했다. 글로벌 도시답게 유럽의 상품으로 채운 멀티숍이나 갤러리, 부티크 등 예술적 감각이 만개한 상점들을 쉽게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최근엔 골목여행을 즐기려는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노호나 포호가 각광 받는 이유는 오래된 식당과 근대 유산 사이에 젊은 감각의 펍이나 레스토랑이 자연스럽게 얽혀 있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다. 시간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는 것 같은 느낌. 한 골목은 18세기 홍콩의 칙칙한 분위기가 느껴지다 언덕을 넘으면 최신식 편집숍이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길을 걷다 지칠 즈음에는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하늘을 가릴 것 같은 마천루 아래 편안하게 숨쉴 수 있는 작은 공원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올드타운 포호에 있는 블레이크 가든(Blake garden)과 할리우드 로드의 할리우드 로드 파크(Hollywood road park)에 앉아 있으면 시간마저 살짝 낮잠에 빠져든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성이 책과 아이 얼굴을 번갈아보며 시간을 음미하고 있다. 장기를 두거나 태극권에 빠져 있는 노인의 모습은 왠지 정겨운 느낌까지 들게 한다.
오래된 건물 홍콩의 진면목을 보다
공원을 빠져나와 종심법원 쪽으로 가다 보면 고풍스런 고딕 양식의 성당이 나타난다. 성요한 대성당(St.John’s Cathedral)이다 청콕 공원의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상앗빛 아름다운 성당 건물. 성요한 대성당은 1849년 지어진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 성공회 성당이다. 168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대성당은 기품이 있고 당당하다.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했을 무렵 잠시 클럽하우스로 개조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포호지역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건물은 1918년 완공된 YMCA다. 홍콩의 1급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YMCA 건물은 ‘중국 문학의 아버지’이자 아큐정전의 저자인 루쉰이 1927년 강연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건물은 대단히 독특하다. 미국 시카고 학교 건축 스타일에 중국식 처마를 도입해 동·서양의 건축 기법을 동시에 활용한 실험적인 건축물이란 점도 흥미롭다.
1841년 시작돼 1850년 완공된 래더 스트리트(Ladder Street)는 홍콩의 1급 문화유산으로 무려 350m의 가파른 언덕길이다. 언덕 많기로 유명한 홍콩산책에 익숙해졌다면 들를 만하다. 래더 스트리트와 할리우드 로드 사이에 자리 잡은 만모사(Man Mo Temple)도 오래된 사원이다.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무신으로 모시고 있는 만모사에 도착할 무렵 비가 오기 시작했다. 사원 안은 뿌연 연기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란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머리 좋은 아이를 임신하게 해달라거나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멈추지 않았다.
주윤발의 고향 라마를 가다
홍콩의 많은 섬 중에서 라마는 란타우섬, 홍콩섬, 츠레자오(첵랍콕)섬에 이어 홍콩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많은 섬을 제쳐두고 라마섬을 찾은 것은 영화배우 주윤발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주윤발은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이 작은 섬에서 태어나 할리우드 스타로 성장했다. 센트럴 페리선착장 4번 부두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라마섬의 용수완이나 소쿠완 선착장에 도착한다. 라마 사람들은 대부분 선착장인 용수완과 소쿠완 근처에 모여 산다고 한다.
라마의 분위기는 마치 한국의 1980년대 같은 풍경이다. 어딘가 낡고 조금은 촌스러워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정겨운 풍경. 용수완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200m가 채 안 되는 상점가가 섬의 가장 번화한 곳이다. 상점과 음식점들 사이로 보헤미안 느낌의 이국적인 가게가 섞여 있는 묘한 동네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아 2시간 정도만 발품을 팔면 둘러볼 수 있다.
예전에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튜브풍선부터 홍콩의 대표적 군것질거리인 어묵튀김, 계란빵까지 다양하게 만나 볼 수 있다. 라마섬은 또한 홍콩에서도 손꼽히는 해산물 요리 명소여서 페리 선착장 입구부터 가는 곳곳에 시푸드 레스토랑이 있다. 레인보우 레스토랑이 관광객 사이에 가장 유명하지만, 굳이 그곳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돌아다니면 적당한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식당을 만날 수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맛 딤섬
홍콩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은 딤섬(點心)이다. 홍콩의 광둥요리를 대표하는 딤섬은 마음의 점을 찍는다는 우아한 뜻을 담고 있다. 홍콩의 광둥요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원래 ‘간단한 점심식사’를 뜻하는 말로 중국에서 유래했다. 현대에 와서는 중국,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인기 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그 종류도 만두류부터 스낵류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에 달한다. 아침 대용이나 점심 이후 출출할 때 가볍게 즐기는 간식거리로 이용되는 간편식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코스 요리의 중간 식사로 먹고 홍콩에서는 전채음식, 한국에서는 후식으로 먹는다. 기름진 음식이기 때문에 차와 함께 먹는 것이 좋으며 담백한 것부터 먼저 먹고 단맛이 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먹는다. 딤섬은 조리법이나 안에 들어가는 음식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작고 투명한 것은 교(餃), 껍질이 두툼하고 푹푹한 것은 파오(包), 통만두처럼 윗부분이 뚫려 속이 보이는 것은 마이(賣)라고 한다. 대나무 통에 담아 만두 모양으로 찌거나 기름에 튀기는 것 외에 식혜처럼 떠먹는 것, 국수처럼 말아먹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홍콩=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 메모
홍콩을 즐기는 법은 다양하지만 아이디어 상품이나 편집숍 혹은 맛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포호의 할리우드 로드에 자리한 인비트윈. 빈티지 잡화, 문구, 식기, 소품을 취급하는 숍이다. 파란색으로 칠한 외관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고가의 제품도 많지만, 꼼꼼히 둘러보면 적절한 가격의 물건을 ‘득템’할 수도 있다.
홈리스(homeless.hk)는 세계 디자인 제품들을 엄선한 셀렉트 숍. 국내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필기구, 노트, 초, 벽시계, 조명 등 제품군의 범위가 넓다.
밀크티를 좋아한다면 티카(teakha)는 빼먹지 말고 들러야 한다. 오직 차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주문하면 그때부터 포트에 끓여서 내놓는다. 가게 밖 골목 안쪽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여행객들은 주로 그 공간에서 차를 마신다.
중국식 번인 ‘바오(Bao)’를 사용한 수제 버거가 인기인 리틀바오는 매장이 몹시 작아 오픈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 구운 통삼겹살이 들어간 버거는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크기는 작지만 속이 꽉 차 있어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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