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돈 봉투 회식'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핵심 간부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을 감찰하라고 법무부와 검찰에 지시함에 따라 새 정부가 공언한 검찰 개혁이 이를 계기로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권력기관 중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을 검찰을 꼽았다. 지난 11일 개혁·진보 성향의 소장 법학자인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에 파격적으로 임명한 것은 강한 검찰 개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조 수석 임명과 동시에 임기가 반 년가량 남은 김수남 검찰총장까지 전격적으로 용퇴하면서 공석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를 계기로 검찰 조직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미묘한 시점에 '돈봉투 회식'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이 인적 쇄신 가속화의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관한 입장 표명마저 자칫 '기득권 내려놓기'에 미적대거나 개혁에 저항 또는 소극적인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하는 상태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내놓은 검찰의 안일한 해명이 문 대통령의 감찰 지시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15일 이 지검장 등 검찰 특별수사본부 핵심 간부 7명과 안 국장 등 검찰국 간부 3명이 음주를 곁들인 회식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을 철저하게 수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여전한 가운데 그와의 관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안 국장과 국정농단 수사팀이 굳이 술을 마시고 돈 봉투를 주고받은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 지검장이 검찰 후배 격려 차원에서 법무부 각 실·국과 모임을 해 오면서 그 일환으로 검찰국 관계자들과 저녁 모임을 했으나 식사 당시 검찰국장은 내사 또는 조사 대상도 아니었고 이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의 상급자로서 부적절한 의도가 이 모임에 개재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오히려 민심을 자극했고,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법 감정을 지닌 검찰에 대한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오히려 비등하는 계기가 됐다.
법무부 역시 논란이 된 돈 봉투에 담긴 자금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지 않았다. 법무부는 당시 "검찰 행정과 관련해 주요 수사가 끝난 다음에 예산 항목과 집행 규칙에 맞게 수사비 지원 차원에서 집행한 것이고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며 "일선 청에 지원되는 금일봉이나 수사비의 구체적 내역은 그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사안이 보도되고 석연찮은 게 있고 해명도 부적절하니 우선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한 것"이라며 "대통령께서 매우 단호하게 지시하셨다"고 부연했다.
새정부가 출범해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쏘아져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검찰과 법무부의 안이한 태도가 불을 지른 셈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로 검찰 특수 수사의 최선봉장이 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 인사권과 예산, 수사 정보를 틀어쥔 검찰국장은 검찰 최고위직 핵심 보직으로 손꼽힌다.
과거에는 대검 공안부장, 반부패부장과 함께 '빅 4'로 불렸으나 요즘은 '빅 2'로 재편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런 핵심 간부 두 명이 동시에 위법 의혹에 휩싸여 감찰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검찰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같은 사안으로 동시 감찰을 받은 것은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이날 '돈 봉투'의 자금 출처를 밝히라면서 오랜 검찰의 관행인 특별활동비의 사용 내역까지 철저히 들여다보라고 요구한 것 역시 향후 본격적으로 불어닥칠 검찰 개혁의 강도를 어느 정도 짐작게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에 오르던 이 지검장이 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감찰 대상에 올라 사실상 총장 인선 경쟁에서 밀려남에 따라 향후 검찰 수뇌부 인사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총장 후보군과 고검장 승진 인사 대상에 포함되는 연수원 17∼20기, 검사장 승진 인사 대상인 22∼23기 등을 중심으로 인사 폭이 당초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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