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안쓰면 퇴직 때까지 누적
플로리다 공무원 4만5000명 은퇴할 경우 1억5400만달러 수령
적자 허덕이는 지방 정부들, 보상 없애거나 줄이는 방안 추진
공공 일자리 확대 우려 목소리
[ 김현석 기자 ] 미국 공무원들이 막대한 연금, 의료보험 혜택 외에 쓰지 않은 유급병가에 대한 보상으로 수십만달러씩을 타가면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유급병가는 적용 범위가 민간으로 확대돼 중소 자영업자의 골칫거리로도 떠올랐다. 공무원·군인연금 적자가 매년 수조원씩 생기는 가운데 향후 5년간 81만개 공공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공약에 대해 국내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4만2000여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공무원이 유급병가를 쌓아둘 수 있는 한도를 최대 1000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3월 마운트와추셋 커뮤니티칼리지의 댄 아스퀴노 학장이 퇴직하며 유급병가 480시간을 포함해 재직 기간 사용하지 않은 휴가의 보상비로 33만4138달러(약 3억7700만원)를 받아가 논란이 불거져서다. 또 다른 커뮤니티칼리지의 학장도 46년 재직하며 쌓아둔 유급병가 1250일의 대가로 26만6060달러를 수령했다.
베이커 주지사의 제안은 11개 공공노조와 협의해야 해 시행 가능성이 크지 않다. 케빈 프레스턴 매사추세츠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은 오랜 기간 봉직 끝에 아주 작은 혜택을 받아가는 것”이라며 “갑자기 얻게 된 횡재가 아니라 아주 어렵게 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사추세츠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도 지난해 10월 한 경찰관이 은퇴하며 242일의 유급병가 대가로 14만2315달러를 받았다. 플로리다주 공무원 4만5000명이 받을 수 있는 유급병가 대가는 모두 1억54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내 공무원의 유급병가 보상은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다. 연금이나 의료보험처럼 액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적자가 확대되면서 유급병가 보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지방정부의 새 골칫덩어리로 등장했다. 콜린 게리 미 하원의원(매사추세츠주)은 “공무원들의 욕심이 지나치다”며 “10만달러가 넘는 유급병가 보상금은 자동으로 없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유급병가 보상은 민간 영역에선 드물다고 WSJ는 보도했다. 톰 라일리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민간 근로자의 3분의 1은 아예 유급병가란 게 없다”고 지적했다.
유급병가 제도는 지역별로 달라 미국 전체로는 부담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라일리 교수가 2014년 140개 대도시와 카운티를 조사했더니 77%가 유급병가를 쌓아두는 데 제한이 없었고, 공무원은 대부분 은퇴할 때 돈으로 받아가고 있었다.
지방정부는 따로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은퇴자가 많으면 예상치 못한 적자를 낸다. 뉴저지주 저지시티는 2013~2015년 유급병가 보상비를 주려고 2500만달러에 이르는 빚을 냈다. 저지시티 시정부가 앞으로 줘야 할 유급병가 보상액은 1억1600만달러에 달한다. 뉴저지주 의회는 유급병가 보상을 제한하거나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는 지난 8일 경찰, 소방관에 대한 보상을 750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른 주도 대책을 찾고 있다. 텍사스, 테네시 등은 돈 대신 은퇴일을 앞당겨주는 식으로 보상한다. 위스콘신, 웨스트버지니아는 의료보험 보장 범위를 그만큼 넓혀주고 있다. 미시간주는 1980년 이후 유급병가 보상을 없앴으나 그 전에 임용된 1200명의 공무원에게 3600만달러를 보상해줘야 한다.
■ 유급 병가
sick leave. 미국은 공무원, 공공기관 근무자에게 매년 3~6일(24~48시간)의 유급병가를 준다. 본인이 아플 때뿐 아니라 자녀, 부모, 형제, 조부모, 손자·손녀 등 가족 간병을 위해서도 쓸 수 있어 사실상 유급휴가와 비슷하다. 안 쓴 병가는 다음 해로 이월해 누적할 수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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