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 “야당과 수시로 논의하는 협치를 해나가겠다”는 말에서 그런 의지가 읽힌다. 하지만 통합과 협치를 하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거과정에서 쏟아낸 수많은 공약 중 논란이 된 것은 과감히 조정하는 데서부터 통합과 협치의 문을 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지형을 감안하더라도 공약 재검토는 불가피하다. 문 대통령 공약 중엔 국회를 거쳐야 할 게 적지 않지만 민주당 의석수 120석은 과반(150석)에 한참 못 미친다. 국민의당, 정의당과 손을 잡아도 국회선진화법상 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위한 요건 180석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공약의 관철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지만 다른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60%에 달한다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까지 감안하면 이 수치는 70%에 육박한다. 여기에 문 대통령 득표율이 지난 대선 때보다 떨어진 점, 국민의당이 문 대통령이 대표를 맡았던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이번 대선에 안철수 후보를 냈던 점 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공약 조정 없이는 협치도, 통합도 어렵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재원 측면에서도 공약을 엄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을 5년간 178조원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세제를 개혁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 동의를 전제로 증세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이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공약 조정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 공약 중엔 재검토해야 할 게 적지 않다. 한경이 새 대통령의 정책과제와 관련해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창출에 대해 78%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대선기간 내내 논란이 됐던 것도 문 대통령의 공공 일자리 81만개 창출이었다.
무리한 공약은 폐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경제단체들이 축하와 함께 기업환경 개선을 당부하는 논평을 내놨지만, ‘재벌 개혁’ 공약에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재계가 시범 케이스로 걸려들 것을 두려워하고 코드를 맞출지 전전긍긍한다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하는 정상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투자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안보와 더불어 경제회복은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통합과 협치로 가겠다면 공약의 구조조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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