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소녀가 본 나치 탄압시대
"유대인은 전차도, 자동차도 타지 못해 슬퍼"
안네에게서 찾는 삶의 희망…
‘노란 별’을 단 안네 가족
연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봄날을 즐길 형편은 아닌 듯하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라 안은 대선 정국으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협박을 일삼고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탑재한 항공모함을 한반도 인근 해상에 대기시켜 놓았다.
전쟁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 전쟁은 단 하루 만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끝나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몇 년씩 계속됐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도 3년간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피란을 가고 숨어 지내야 했다.
쫓기고 숨어 지내는 불편은 얼마나 클까. 열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나치를 피해 숨어 지낸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를 보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던 안네는 1933년 히틀러가 지배하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난을 겪는다. 나치는 인종주의 정책을 펼쳐 유대인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안네의 가족들은 나치를 피해 193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네덜란드도 1941년 나치에 점령당하고 만다.
1942년 6월12일, 열세 번째 생일에 선물받은 일기장에 안네는 ‘키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6월14일부터 일기를 쓰면서 아빠, 엄마, 언니와 살고 있고 아빠는 잼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은 언니가 다니는 유태인중학교에 입학했다는 얘기를 키티에게 자세하게 들려준다. 노란 별을 달고 다녀야 하는 유태인은 전차도, 자동차도 탈 수 없다고 슬퍼하면서도 남학생이 자신을 좋아하며 자신은 수다쟁이라는 걸 알려준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안네의 가족들은 아빠의 사무실이 있던 건물 4층으로 옮겨 숨어살기 시작한다. 안네의 가족 4명, 펜던 씨 부부와 아들 피터, 치과의사 뒤셀 씨까지 8명이 함께 산다.
좁은 공간에 24시간 갇혀 생활하면서 소리를 낼 수 없고 밤에 불을 켜도 안 된다. 아래층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식재료를 구하지만, 감시가 심해지면 며칠 동안 양배추와 썩은 감자만 먹고 지내기도 한다. 몇 겹씩 껴입고 온 옷은 점점 작아져서 마치 동생 옷을 입은 것 같고 생리를 시작한 안네는 묘한 기분 속에서 생리대 걱정을 한다.
가까이에서 어른 다섯 명을 지켜본 안네는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못할 때도 있다는 걸 목격한다. 늘 티격대는 펜던 씨 부부와 짜증이 심한 엄마, 욕심 많은 뒤셀 씨에게 실망하지만 아빠만은 존경한다.
작가와 기자를 꿈꾸며···
다른 곳에 숨어 지내던 친한 가족이 잡혀갔다는 얘기에 은신처 사람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몰래 듣는 라디오에서 연합군이 독일군을 무찔렀다는 소식에 희망을 갖는다.
작가와 기자가 꿈인 안네는 스스로 시간표를 정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책을 많이 읽는다. 틈틈이 동화와 소설을 써서 은신처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힘든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피터와 함께 지내는 시간만큼은 온통 분홍빛이다.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안네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확고한 견해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소녀의 감성을 잃지 않는 안네 프랑크가 하루하루 쓴 일기는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풍성해 아슬아슬하면서도 감미롭고 안타까우면서도 감탄스럽다. 전쟁이 끝나면 책으로 내고 싶다던 안네의 마지막 일기는 1944년 8월1일에 끝난다. 사흘 후 독일 비밀경찰에게 은신처가 발각돼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안네는 옮겨간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1945년 3월 사망한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에 의해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나왔고, 전 세계인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안네를 만나고 있다.
살다보면 이겨내기 힘든 일이 닥쳐오기도 한다. 그럴 때 ‘매일 매일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라며 희망을 품었던 안네를 떠올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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