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HIS 구축에 가장 많이 배정
인공지능 개발 등은 쏙 빠져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 이지현 기자 ]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남았다.”
정부의 유전체·헬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기반 정밀의료 기술개발 사업 보고서를 살펴본 한 보건의료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정부는 국가 정책과제로 정밀의료 사업을 선정하고 관련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가 2021년까지 5년간 5063억원을 투입해 추진하기로 한 사업예산은 752억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일부 중복 사업이 있는 데다 사업성도 낮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비 삭감에 대한 의료계의 시선은 차갑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보건의료 육성 의지가 허울뿐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입을 모았다.
예산이 대폭 줄면서 정작 중요한 사업비 배정은 빠졌다. 당초 정부는 진행성 암 진단·치료기술, 정밀의료 기반 건강관리 서비스 개발, 인공지능(AI) 기반 진단·치료 지원 솔루션 개발 등 5개 세부계획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예산이 줄면서 암 치료 기술 개발에 470억원, 서비스 개발에 282억원만 배정됐다. 서비스 개발 분야에서 가장 많은 193억원이 배정된 분야는 클라우드 기반 의료기관정보시스템(HIS) 구축 사업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국내 의료 현실을 고려할 때 예산 배정이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의료기관의 90% 정도가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한 데다 해외에서 관련 시스템 표준화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기 때문이다. 보건의료계 한 관계자는 “HIS를 클라우드에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활용해 분석한 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종합적인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1단계 사업 예산만 남게 되면서 있으나 마나 한 과제가 됐다”고 했다.
대규모 예산 삭감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밀의료 사업을 국가 정책과제로 정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줄기세포 연구 등도 흐지부지됐다는 소문이 있다”며 “보건의료 기술을 육성하려면 원칙과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밀어붙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업 예산이 대폭 줄었지만 정밀의료는 미래 바이오 시장을 위해 육성해야 할 분야다. 대규모 블록버스터 신약이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개개인의 유전자 등에 따라 맞춤 치료와 예방을 하는 정밀의료가 새 시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달 정밀의료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예산은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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