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일 기자 ]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영업을 시작하면서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금지하는 은산분리 규제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K뱅크는 지난 3일 문을 연 이후 나흘 만에 가입자 12만명을 돌파했다. 인터넷 모바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만으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가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 때문에 K뱅크는 추가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은산분리 때문에 추가 투자를 위한 증자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 초과해 보유할 수 없고, 4% 초과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K뱅크의 주요 주주인 우리은행(10%) KT(8%) 등이 증자에 나설 경우 우리은행의 지분율과 의결권은 커지지만 산업자본인 KT의 지분율과 의결권은 각각 10%와 4%로 묶일 수밖에 없다. 증자가 이뤄지면 K뱅크는 사실상 우리은행 자회사가 될 공산이 크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KT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선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도 34∼50%의 지분 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은산분리 규제를 찬성하는 측에선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예외를 허용하면, 은행 전체에 대한 규제 완화의 시발점이 돼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시를 철저하게 해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찬성
인터넷은행도 대주주 '私금고화' 우려…기존 은행, 핀테크 혁신 충분히 가능
미국서도 여전히 은산분리 원칙 유지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의 출범은 24년 동안 은행이 신설되지 않아 과점 상태인 은행산업에 경쟁과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최근 은산분리 규제 완화 문제가 추진 과제로 떠오르고 있어 우려스럽다. 은산분리란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다. 자금의 수요자인 비(非)금융 기업이 은행의 돈을 사금고처럼 마구 써버려 은행 경영을 망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은행이 성공하려면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혁신적인 경영을 위해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가 돼 주도해야 한다는 이유다. 이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과 특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 법률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은산분리 원칙을 허무는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인터넷은행에 한해 예외를 두는 것은 향후 다른 일반은행에 대해서도 이 원칙이 무너지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ICT 기업도 자금 수요자라는 점에서 다른 산업자본과 비슷하다. 그래서 금융 선진국인 미국도 인터넷은행에 대해 여전히 은산분리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대주주인 ICT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 자연히 자금의 공급처인 자신의 은행 금고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규제 완화 찬성 측에선 인터넷은행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해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저축은행 파산 사태나 동양그룹 사태를 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다. 일부 저축은행 오너들은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했다. 동양그룹은 당시 경영이 어려워지자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계열사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에게 팔았다. 검찰에 따르면 동양레저와 동양캐피탈 등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 중 9942억원 상당이 지급불능 처리됐고, 피해자가 4만명에 달했다.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은산분리 규제 완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인터넷은행도 은행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고객의 예금을 받아 대출 업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여신 관리 등 업무가 중요하다. 아무리 최신 금융기술을 개발해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도 여신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인터넷은행이 주요 수익원으로 리스크가 큰 중금리 대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여신 관리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ICT 기업이 대주주가 돼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얘기다.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도 별도 인터넷은행을 설립해 충분히 주도할 수 있다. ICT 전문 인력을 채용해 금융기술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신한은행의 써니뱅크와 우리은행의 위비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자본 대주주에 의해 은행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은행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은행 경영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경영에 실패할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은산분리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인가를 하든지, 아니면 현행 체제하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어야 했다. 금융위는 인터넷은행이 금융산업에 혁신을 가져오는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은 과장돼 있다고 보인다. 오히려 금융위가 할 일은 기존 은행의 진입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다. 현재 은행산업은 몇 개의 대규모 은행이 시장을 주도하는 과점 상태다. 서민은행이나 사회적 은행 등 다양한 형태의 은행이 나타나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자금 공급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
금융당국 감시강화로 사후 관리 충분…4차 산업혁명 시대 新시장 개척해야
저축銀과 달리 '私금고화' 염려 없어
인터넷전문은행은 확실히 기존 은행과 다르다. 인터넷은행은 비(非)대면 인증을 통해 계좌 개설에 7분가량이 걸리고, 상대방의 휴대폰 번호만 알면 송금이 가능하다.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명서가 별도로 없더라도 자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중(中)금리 대출상품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막대한 점포 네트워크와 고객 기반을 갖춘 시중은행들도 긴장할 정도로 은행권 안팎의 관심이 크다. 기존 은행 서비스와 차별화된 상품이 예고되면서 소비자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사실상 설립 주체인 KT와 카카오가 일반 기업, 이른바 산업자본이다 보니 은행의 지분 소유에 제약이 상당하다. KT의 경우 소유 지분 10%(현재 지분율은 8%), 의결권 4%라는 제한에 묶여 있다.
은산분리 논리는 ‘은행 사금고화’와 ‘배고픈 늑대 효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반 기업(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면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 은행에 예금된 돈을 불법대출을 통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게 사금고화 주장이다. 또 평소에는 은행 예금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자기가 힘들어지고 자금이 부족해지면 영향력을 행사해 은행 돈을 건드릴 것이라는 게 배고픈 늑대 효과의 논리다. 이와 함께 저축은행 사태와 동양그룹 사태가 근거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은행과는 다른 문제다. 인터넷은행 대주주들은 저축은행 대주주들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기업이다. 동양그룹과도 비슷한 사례로 엮기 어렵다. 동양그룹은 은행 대출이 많은 상황에서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칼날을 피하기 위해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했다. 이를 옛 동양증권을 통해 고객들에게 팔았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은행 빚을 갚아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됐다. 이후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2만여명의 고객에게 피해를 줬다. 엄밀히 따져보면 은행 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 은행 돈을 갚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금융+기술) 열풍이 거세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기존 은행도 이런 새로운 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과거와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점포 중심의 영업을 기반으로 하는 대형 백화점식 영업 전략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인터넷은행은 다르다. 점포가 없고 비대면 거래가 중심이다. 일반 소비자에 대한 소액 거래 중심의 영업을 통해 즉각적인 시장 수요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런 영업 모델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될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될 수 있다.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이 모델을 수출할 수도 있다. 기존 은행에 대해서는 별로 반응하지 않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우수한 ICT에 기반을 둔 인터넷은행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은행산업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은행은 잘 키우고 육성해야 할 대상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은행을 잘 키우겠다는 대주주에 대해선 은행 자본을 충분히 확충할 수 있도록 지분 제한을 풀어주는 게 맞다. 대주주 전횡과 대주주 간 담합이 걱정되면 차라리 KT와 카카오는 자기가 대주주인 은행은 물론 다른 인터넷은행으로부터도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면 된다.
은산분리는 금과옥조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이에 맞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어렵게 출범한 인터넷은행에 대해 은산분리 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철폐해 신(新)기술 기반 금융산업 발전을 확실하게 추진해야 할 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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