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태 IT과학부 기자) 미국에 사는 빌 코체바씨(53)는 8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목을 심하게 다친 그는 결국 팔다리를 쓸 수 없는 전신마비 신세가 됐다. 그러나 과학이 선사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포크로 으깬 감자를 떠먹는다. 머리에 연결된 전극센서와 마비된 근육에 전기자극을 줘서 움직이게 하는 이른바 ‘신경보철’ 장치를 통해 다시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미국 오하이오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연구진이 개발한 신경보철 장치를 통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코체바씨의 사례를 29일 소개했다.
코체바씨가 받고 있는 신경보철 치료는 팔·다리 움직임을 관장하는 대뇌 운동피질의 신호를 포착해 컴퓨터로 해석한 뒤 마비된 팔에 연결된 외골격을 움직이고 손가락 근육을 자극하는 원리다. 환자 뇌에서 팔과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신호가 포착되면 이를 전기신호로 바꿔 팔과 연결된 외골격 로봇팔을 움직이고 팔과 손에 삽입한 장치로 운동 근육을 자극해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다. 전신마비 환자들은 뇌와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세포가 망가지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뇌의 운동 영역은 정상 작동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코체바씨는 먼저 4개월간 가상현실(VR) 속에 만들어 놓은 팔과 손을 보면서 손목을 비틀거나 손을 움켜쥐는 생각을 하도록 집중 훈련을 받았다. 전기자극을 주는 전극 36개를 위팔과 팔뚝, 엄지를 포함한 4개 손가락에 심었다. 그리고 하루 8시간씩 18주에 걸쳐 근육을 자극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 근육의 힘과 움직임이 향상됐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뇌 전극과 외골격 팔, 손가락 자극 센서를 모두 연결했다. 총 12차례 팔을 움직이는 시도에서 11차례가 코체바씨 생각대로 움직였다. 한번 팔을 움직이는 데는 20~40분씩 걸렸지만 손가락을 쥐고 팔을 뻗는 동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처음으로 머리에 전극 센서를 붙인 지 717일만이다. 코체바씨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온몸이 완전히 마비된 환자의 팔과 손가락 기능을 되살린 최초 치료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랜싯 최신호에 “현재 연구는 초기 단계지만 신경보철 치료가 결국에는 사지미비 환자의 독립성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움직임이 느리지만 점차 민첩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는 지금처럼 전선을 주렁주렁 달지 않고 무선으로 신호를 전달하고 센서를 피부 아래 보이지 않게 삽입하는 기술도 등장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기술 핵심은 팔과 손가락 기능의 회복에 있다”며 “움직이는 속도는 핵심 가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펄머터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는 “뇌 신호를 컴퓨터에 보내주는 뇌기계인터페이스 기술과 인공관절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고 연구도 실험실 수준에 머문다”면서도 “신경보철 치료라는 새 기술이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라고 평가했다. (끝) /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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