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구원투수로 등판한 여성엔지니어, 2년 만에 사상 최대 매출·주가 6배 '껑충'
두살 때 대만서 미국으로 이민
통계학자·회계사 부모 영향 공학에 취미
IBM 거치며 반도체 기본기 다져, 기술에 대한 지식·시장을 보는 눈 겸비
AMD를 수렁에서 건져내다
한때 인텔과 라이벌이었지만 적자 커지고 점유율 바닥 '최악'
'반값 CPU' 라이젠 개발 진두지휘, 가성비 앞세워 인텔 대항마로 키워
[ 홍윤정 기자 ] 지난 2월2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리사 수(49) 어드밴스트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 최고경영자(CEO)가 신제품을 발표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라이젠’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 사이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하지만 발표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경쟁사인 인텔 제품보다 성능은 뛰어난 반면 가격은 절반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1주일 뒤 AMD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주당 15.2달러까지 뛰었다.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아시아계 여성 CEO가 반도체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실적 개선과 경쟁사를 뛰어넘는 신제품 출시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이뤄졌다. 경영에 참여한 지 2년 만에 인텔에 대항할 튼튼한 체력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AMD는 CPU 시장에서 인텔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에서 반도체 공부한 전문가
수는 1969년 대만 타이난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통계학자였고, 어머니는 회계사였다. 2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부모는 수학과 과학 교육에 집중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사업의 개념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가정환경은 그가 이후 엔지니어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성공적인 경영자가 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10살 때 수는 오빠의 원격조종 자동차를 분해했다. 장난감을 뜯고 고치며 작동방법을 알아내면서 공학에 취미를 갖게 됐다. 중학교 때 첫 컴퓨터인 애플2를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 대해 “사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6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했다.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반도체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입학한 해 학부생 연구능력 향상 프로그램(UROP)을 통해서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대학원생들을 위해 시험용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학부 연구 보조원을 맡았다. 그해 여름 반도체 소자 생산업체인 아날로그디바이스(ADI)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후 MIT에서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최첨단 반도체 소자 기술에 대한 공부를 이어갔다.
AMD 구원투수로
MIT를 졸업한 뒤 수는 미국 반도체 기업을 옮겨다니며 경력을 쌓았다. 1994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입사해 반도체 프로세스 디바이스 센터에서 근무했다. 이후 IBM으로 이직해 장치물리학 리서치 부문에 들어갔고, 리서치개발센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다시 프리스케일반도체로 자리를 옮겼다.
AMD에 합류한 건 2012년이다. 글로벌 사업부 부사장을 맡아 제품 전략과 사업계획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입사 2년 만인 2014년 10월 이사회는 수를 새 CEO로 임명했다. 전형적인 기술자의 길을 걸어오던 아시아계 여성 엔지니어를 CEO로 발탁한 것은 업계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AMD는 인텔과의 점유율 경쟁에서 밀리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CPU 시장을 인텔과 절반씩 나눠 가졌으나 2014년 점유율은 20%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나머지 80% 이상을 인텔이 차지했다. 업계 2위라고 하기엔 1위인 인텔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그해 4분기 순손실은 3억6400만달러(약 4100억원)에 달했고,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나 줄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백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다.
더 이상 고꾸라질 데도 없었다. 그런 시기에 이사회는 경영 경력이 전혀 없던 수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1980년 창립 이후 최초의 여성 CEO였다. 수는 이사회에 “이런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AMD를 이끄는 기회를 갖게 돼 영광”이라며 “2년 내 새로운 구조의 CPU와 그래픽 하드웨어 기술로 AMD를 되살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년 새 주가 6배 뛰어
그의 어떤 면모가 이사회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수의 장점은 엔지니어로서 기술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면서도 시장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도 주효했다.
그가 IBM에서 근무하던 시절 반도체의 배선 공정을 알루미늄에서 구리 접합 방식으로 대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알루미늄보다 저항이 낮은 구리를 소재로 사용해 효율을 높였고, 이후 경쟁사들도 구리 접합 방식을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배선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2013년 일본 소니와 닌텐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AMD의 CPU를 차세대 게임기에 적용하기로 결심한 데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2014년 브루스 클래플린 AMD 이사회 이사장은 수의 CEO 선임을 발표하면서 “전문성과 검증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AMD를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가 경영을 맡은 뒤 몇몇 전문가는 AMD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내놨다. 그러나 수는 AMD를 빠른 속도로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적자를 지속하던 AMD의 실적은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3분기 매출은 8억35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CEO 취임 당시인 2014년 10월 주당 2달러대에 머물던 주가는 올해 2월 주당 15.2달러까지 6배 가까이 뛰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수가 약속한 2016년에 이르러 AMD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가성비’ 승부수 던진 라이젠
수는 최근 또다시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달 초 신제품 CPU ‘라이젠’ 출시를 통해서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인텔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으로 명맥을 이어왔던 AMD가 반격에 나섰다는 평가를 내놨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PC 사용자들로부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최고’라는 평을 얻고 있다. 물론 인텔이 석권한 CPU 시장을 되찾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AMD가 CPU 시장에 가성비 경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성과의 기저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수의 안목이 한몫했다. 그는 앞으로 5년간 500만대의 기기가 인터넷과 연결될 것이라며 AMD에는 여전히 기회가 많다고 강조한다. 그는 “몇 년 전 변화는 태블릿과 모바일 분야에서 이뤄졌지만 오늘날의 변화는 (CPU의) 성능에 관한 것”이라며 “AMD가 새로운 시장에서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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