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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이탈리아 '다섯개의 보석' 오! 친퀘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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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단골 여행지 이탈리아 친퀘테레

같은 듯 다른, 다섯 마을은 공평하게 아름답다
절벽 위 보석처럼 박혀있는 파스텔톤 집, 술꾼 어부가 집 헷갈리지 않게 다른색을 칠했다고…




‘지금까지 다녀본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예요?’

여행 작가로 살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면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 범위를 전 세계가 아니라 유럽이라는 하나의 대륙으로 축소해도 대답하기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예술과 낭만이 넘쳐흐르는 유럽 대륙에서 딱 한 곳만 골라야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인기 여행지인 이탈리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당당히 얘기할 수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풍경은 북부 해안가에 자리 잡은 ‘친퀘테레’에 숨어 있다. 이탈리아어로 ‘친퀘(Cinque)’는 ‘다섯’이라는 뜻이고, ‘테레(Terre)’는 ‘마을’을 의미한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곳이지만 다섯 개의 마을 중 그 어느 곳을 먼저 보더라도 ‘테레’라는 단어가 ‘마을’이 아니라 ‘보석’을 뜻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서나 반짝반짝 빛나는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친퀘테레의 시작점, 리오마조레

친퀘테레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 도시인 피렌체에선 기차를 탄다. 피렌체를 출발해 2~3시간 정도 철길을 달리고 나면 ‘라 스페치아’라는 제법 큰 도시에 닿고, 이어 친퀘테레의 관문 역할을 하는 ‘리오마조레’가 나타난다.

리오마조레는 다섯 마을의 첫인상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기차역에서부터 이어진 작은 터널을 지나 마을이 나타나는 순간,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세 가지 풍경이 한 번에 펼쳐진다.

거칠게 요동치는 옥빛 바다. 그 바다를 온몸으로 막아선 채 늘어선 해안 절벽. 그리고 절벽 위에 보석처럼 콕콕 박혀 있는 파스텔 톤의 집들. 누구라도 처음 보는 순간 감탄사를 아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똑같은 색이 하나도 없는 수백 채의 집은 리오마조레의 자랑이자 친퀘테레의 상징이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형형색색의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너무 깜찍해 리오마조레만 보고 가도 본전은 뽑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모든 집이 각기 다른 색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의견이 분분한데 술꾼인 어부들이 술에 취한 뒤 자신의 집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서로 다른 색으로 칠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술 취한 어부들은 아내에게 구박을 당했을지언정 관광객에겐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단점이 없을 것 같은 리오마조레의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첫눈에 반할 만큼 지나치게 아름다워 뒤에 이어질 네 개의 마을에 대한 기대감을 너무 높인다는 점이다.

산책하기 좋은 마을, 마나롤라

친퀘테레의 두 번째 마을인 마나롤라에도 역시 절경이 이어진다. 해안 절벽과 다양한 색의 집, 리오마조레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건너편 절벽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기에는 훨씬 좋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절벽 사이를 비집고 다양한 색의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마치 보석 주변을 화려한 자수로 둘러싼 것 같다. 앞서 리오마조레를 보고 왔기에 마나롤라에 도착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두 마을을 비교하려는 마음이 샘솟지만 마나롤라를 딱 10분만 둘러봐도 그런 생각이 사그라진다. 단 두 마을만 봤음에도 친퀘테레 중 어느 마을이 가장 멋질까라는 생각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중에 깨닫게 되지만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은 공평하게 모두 아름답다.

마나롤라는 무엇보다 야경이 아름다워 친퀘테레에서 하루를 묵어간다면 추천할 만한 도시다. 밤이면 절벽에 매달린 불빛과 하늘에 걸린 달빛이 동시에 마을에 내려앉는다. 해안가를 따라 ‘센티에로 아추로’라 불리는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어 이른 아침에 느릿느릿 산책을 즐기기에도 완벽한 곳이다.

와인의 성지, 코르닐리아

코르닐리아는 다섯 마을 중 유일하게 바닷가가 아니라 산 속에 있는 마을이다. 가는 길부터 만만치 않다.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기차역에서 마을에 닿기 위해선 에누리 없이 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단지 그 이유로 많은 이들이 이 마을을 그냥 지나치기도 하는데 코르닐리아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매력덩어리가 하나 숨어 있어 결국 여행자들의 발목을 잡고 만다. 그 주인공은 바로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다. 코르닐리아의 와인은 2000년 전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폼페이에서도 그 병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코르닐리아라는 이름도 이 마을에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며 살았던 지주 코르넬리우스의 어머니인 코르넬리아에서 따왔다고 한다. 와인의 마을답게 형형색색의 집들 아래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포도밭을 관리하는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곤 한다.

마을 어디서나 쉽게 와인을 맛 볼 수 있는데 병 단위가 아니라 잔 단위로 파는 곳이 많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부담 없이 질 좋은 와인을 음미할 수 있다.

소소한 휴양지, 베르나차

발음부터가 사랑스러운 마을 베르나차는 휴양지의 분위기가 짙은 곳이다. 지금까지 둘러본 세 마을이 절벽 혹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없는 반면, 베르나차는 마을 앞으로 해변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시사철 복작거리는 지중해의 유명 휴양지를 떠올려선 안 된다. 해변의 길이는 채 몇십m도 되지 않는 초미니 수준이고 소란스런 리조트 대신 팔각 종탑을 가진 성당이 호화로운 전망대 대신 아담한 성이 있는 마을이다. 바다로 접근이 쉬운 만큼 예전엔 무역선을 괴롭히는 해적들이 출몰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해적보단 요정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일 정도로 예쁜 경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도리아 성에 오르면 보이는 파노라마 뷰가 일품이다. 성 꼭대기의 성곽을 따라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처음엔 바다가, 그 다음엔 항구가, 마지막엔 마을과 해변의 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을 감상하는 건 베르나차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경험이기에 물놀이가 아무리 좋더라도 해지기 직전엔 성에 오르는 것이 좋다.

친퀘테레의 완벽한 마무리, 몬테로소

마지막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는 다섯 마을 중 가장 크다. 보통 몬테로소라고 줄여 부르는데 마을이라는 표현보다는 도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큰 규모다. 다른 마을에선 보기 힘든 대형 호텔과 별장이 눈에 띄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와인바가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아무래도 해안 소도시의 느낌이 덜 하고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실망하는 여행자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레스토랑에 들러 풍성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고 호텔에선 여유롭게 스파를 즐길 수 있으니 다섯 개나 되는 마을을 돌며 쌓인 여행의 피로를 풀기엔 가장 이상적인 마을이라 할 수 있다. 기념품점도 많아 친퀘테레를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기념품을 구입하기도 좋다.

마을이 제법 크다 보니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걷는 것도 즐거움이다. 독특한 감성을 가진 미술 갤러리와 구경만 해도 흥미로운 각종 상점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재잘거리며 축구를 하는 꼬마들, 호탕하게 웃으며 사진 포즈를 취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다. 노천카페에 앉아 몬테로소의 명물 레몬주스를 마시며 이탈리아의 숨은 보석,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이 친퀘테레를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친퀘테레=글·사진 태원준 여행작가 sneedle@naver.com

여행정보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인 로마, 밀라노, 피렌체 등으로 이어지는 비행편이 많다.(환승 포함) 친퀘테레로 이동하기 위해선 거점이 되는 도시인 ‘라 스페치아’까지 가야 하는데 피렌체에선 기차로 2~3시간, 밀라노에선 기차로 3~4시간이 걸린다. 리오마조레부터 몬테로소까지 다섯 마을은 기차로 잘 연결돼 있다. 친퀘테레 카드(1일권 12유로, 2일권 23유로)를 구입하면 다섯 마을을 오가는 기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각 마을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이용할 수 있다. 마을 간 기차 이동시간은 평균 5분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다섯 마을을 모두 둘러볼 수도 있지만 2~3일 머물며 트레킹 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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