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빈 기자 ]
버버리는 한때 ‘나이든 브랜드’로 인식됐다. 체크무늬와 트렌치코트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져 있던 때다. 그러나 요즘 패션업계에서 버버리는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통한다. 밸류체인을 혁신하고 유통과 물류 과정을 단축하면서 패션업계의 전통적 관행을 파괴했다. 패션쇼의 기준을 다시 제시하고 생산 공장을 통합하기로 하는 등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패션업계는 버버리의 혁신 전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온라인에 적응할 수 있는 빠른 속도
버버리는 2010년대 초부터 온라인 환경에서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달 버버리가 공개한 2017년 2월 컬렉션에서도 이 메시지가 나타난다. 다른 브랜드들이 2월 패션위크 기간에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2월 컬렉션’이라고 이름 붙여 컬렉션 기간을 단축했다. 버버리 관계자는 이를 두고 “온라인 중심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패션 흐름이 빨리 변한다는 점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 쇼는 런웨이에서 선보인 제품을 쇼가 끝난 직후 버버리 매장 및 디지털 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스트레잇 투 커스터머’ 컬렉션이었다.
작년 버버리는 전 공정을 효율화해 제조 속도를 높였다. 패션쇼에서 곧바로 판매까지 이어지는 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작년 9월 ‘시나우 바이나우’ 컬렉션이다. 런웨이에 오른 제품이 오프라인 매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3개월에서 3일로 확 줄였다. 올해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쇼가 끝나자마자 즉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14일 런던 버버리 플래그십스토어 방문했을 때는 이미 2월 컬렉션 하늘색 개버딘 트렌치코트가 전시돼 있었다. 2월 초부터 2월 컬렉션을 부분적으로 선공개해 소비자에게 콘셉트를 알렸다. 이렇게 하면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효율성 높인 통합
버버리는 통합 전략을 통해 제조 효율을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영국 버버리 본사는 버버리 팩토리 두 곳을 하나로 합칠 계획이다. 제조 공정 간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원래 공장 한 곳에서는 직물만 담당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의류를 생산해왔다.
작년 9월부터는 여성 쇼와 남성 쇼를 통합해 보여주고 있다. 이달 전시를 시작한 케이프 쿠튀르 컬렉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입을 수 있는 케이프(망토)를 내놨다. 트렌치코트도 사이즈만 다를 뿐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다.
제품 개발을 할 때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의류 가방 화장품 향수 등 모든 제품군에 관통하도록 기획하는 게 원칙이다. 버버리 대표 원단인 개버딘 직물의 질감과 색상을 트렌치코트에 표현하고 아이섀도에도 나타내는 식이다. 영국 버버리 관계자는 “향수 화장품 의류 잡화 등의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면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소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마치 여러 명의 연설자가 각각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
작년 버버리는 시계 부문을 정리했다. 대부분 패션 브랜드가 시계 라인을 확장한 것과 다른 행보였다. 명품 업체는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품목을 최대한 늘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버버리는 지나친 상품 라인 확장을 피하고 핵심 제품에 주력했다. 명품 브랜드가 여기저기 흔하게 붙어 있는 걸 소비자가 반기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버버리는 앞으로 가방 품목을 강화하는 데 힘 쏟을 예정이다. 가방을 ‘넥스트 트렌치코트’라고 소개할 정도다. 올해 새로 내놓은 모델은 손잡이 달린 가방인 ‘톱 핸들 백’이다. 트렌치코트 질감을 살린 가죽을 활용해 제작했다. 기존에 선보인 호보백과 차별화하면서도 버버리 브랜드 정체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디자인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기존 인기 품목인 트렌치코트는 기능성 소재를 활용하고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꾸준히 인기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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