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예산전쟁' 돌입
외교·환경·복지에 쓸 돈 확 줄여 군 장비 개선 등 국방비에 투입
국경장벽 건설에도 15억달러 배정
민주당 "교육예산 110억달러 삭감…미국의 미래에 대한 모욕" 비판
공화당도 불만…통과 불투명
[ 박수진 기자 ]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첫 예산안이 16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국방과 안전 관련 예산이 대폭 증액되고, 그만큼의 예산이 외교와 환경, 복지부문에서 깎였다.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다음달 28일까지 의회가 처리해야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조차 ‘통과 불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공화당은 국방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민생예산을 삭감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괘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이날 2018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예산 4조달러 중 30%에 해당하는 1조2090억달러 규모의 재량지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사회보장과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복지부문 예산 등을 담은 의무지출 예산안(전체 예산의 62.7%)과 감세법안을 담은 각종 예산 관련 세법개정안은 다음달 9일 제출할 예정이다.
믹 멀베이니 OMB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 부채가 한푼도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안에서 재량지출 규모는 2017회계연도(2016년 10월~2017년 9월)보다 2.5% 줄었다. 15개 부처 중 국방과 국토안보부 보훈부 3개 부처 예산을 늘린 반면 나머지 12개 부처에서 그만큼을 삭감했다.
구체적으론 국방·안전부문에 재량지출 예산의 거의 절반인 5890억달러(49%)가 배정됐다. 비(非)국방 예산은 6200억달러로 삭감됐다. 국방부 예산은 5740억달러로 10% 증가했다. 옛 소련과 군비경쟁을 벌이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이후 가장 큰 폭의 증액이다. 증액폭(523억달러)이 교육예산(590억달러)에 육박한다. 대부분 군 장비 개선과 확충 등에 투입된다. 해외 주둔군 비용에서도 20억달러 증액됐다. 주한미군 비용이 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 제안서에서 “미국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안보 없는 번영은 없다”고 강조했다.
◆유엔 분담금, 저소득국 지원금 감축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사업에도 15억달러 예산을 요청했다. 멀베이니 국장은 “장벽 예산은 몇 개의 시범사업에 쓰일 것”이라며 “다른 지역에 종류가 다른 장벽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벽 건설 예산은 설치할 장벽의 재질과 높이, 디자인 등에 따라 120억~300억달러로 추산됐다.
OMB는 ‘소프트 파워’ 예산으로 분류되는 국무부 예산을 29% 깎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약속한 파리기후변화기금 출연 예산(3억5000만달러)은 항목 자체가 없어졌다. 저개발국 지원을 위한 세계은행(WB) 분담금도 삭감됐다. 유엔평화유지군 지원금 등 유엔 관련 예산 역시 대폭 줄었다. 환경보호청(EPA)은 직원 3200명을 감원하고 예산을 31% 줄이기로 했다. 복지와 교육, 도시개발 등 주요 민생 관련 부서의 예산 삭감률도 두 자릿수대였다.
◆“미국의 미래에 대한 모독”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예산안은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연방정부 역할을 불신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미래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교육 예산이 110억달러 축소된 데 대해 “멍청한 짓”이라며 “절대 예산안이 통과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오늘 제출된 예산안은 상원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분야 기준 예산이 최소 6400억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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