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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털어주는 기자들] 을지로 '커피한약방', 고종황제 마시던 가배의 맛…70년대 을지로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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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라 기자 ] ‘고종 황제가 마시던 커피는 어땠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된 카페가 있습니다. 서울 을지로2가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자리 잡은 ‘커피한약방’(사진)이 그곳.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반쯤 구겨 접어야 들어갈 수 있는 좁다란 길. 처음에는 “이런 데 카페가 있다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타일 창고가 있던 곳. 낡은 나무 문을 조심스레 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벽면, 지금은 보기 힘든 자개장과 한약재를 담던 수납장, 오래된 전등. 그리고 LP판까지. 잡음 섞인 비틀스 노래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유리 창살과 문고리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힘든 소품들입니다.

개화기를 연상시키는 몽롱한 분위기에 빠져 주문하는 걸 잊는 손님도 있습니다. 이때 들리는 ‘칙칙폭폭’ 소리. 기차 소음이 아닐까 했습니다. 원두 직화 로스팅 기계 소리입니다. 주물과 스테인리스로 만든 작은 통은 박용범 바리스타(팀장)와 주인장 강윤석 대표의 손에서 쉴 새 없이 굴러갑니다. 로스팅 통 밑에는 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흩날리는 커피 껍질은 또 다른 재미를 주지요.

‘통돌이’라고 불리는 직화 로스팅 기계는 다른 곳에선 쉽게 보기 힘듭니다. 한 번에 500g의 원두밖에 들어가지 않아서죠. 1800년대 유럽과 일본에서 주로 쓰인 이 기계는 커피 원두의 ‘손맛’을 살리기에 가장 좋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려면 하루 최소 5~6시간씩 통만 돌리고 있어야 하는 게 단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열풍·반열풍 대형 기계를 씁니다. 강 대표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종일 뛰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방식을 버릴 수 없는 건 커피 맛 때문입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필터 커피’입니다. 그날그날 가장 맛있게 볶아진 커피를 내려줍니다. 커피값은 한 잔에 3800~4500원. 주인장의 노동을 생각하며 그 옆에서 마시면 돈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연극·뮤지컬 배우인 강 대표는 어린 시절 을지로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커피한약방을 냈습니다. 그는 “샛노란 나팔바지, 프랑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을 낸 사람들이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곤 했다”고 옛날을 얘기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인증샷 찍기 바쁜 젊은이들과 외국인들, 그 틈에서 멍 하게 앉아 옛날을 회상하는 멋쟁이 노신사까지. 가끔 간판만 보고 한약방인 줄 알고 잘못 들어오는 사람도 있답니다. 아,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부모님과 함께 가보세요. 커피 한 잔은 공짜랍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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