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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재는 시대정신과 여론을 명징하게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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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오늘 오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기각과 각하, 인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표면적으로는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는 그 어느 헌법재판보다도 이목이 집중돼 있다. 박 대통령의 운명은 물론 향후 한국 정치 지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친구까지도 갈라놓을 정도로 극명하게 견해가 갈렸다는 점에서도 그 무게감이 적지 않다.

우리는 단순히 결과에 승복하라는 주장을 넘어 헌법재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다시 조용히 던져 보게 된다. 헌법재판은 헌법 질서를 수호하되 성문 헌법을 자주 개헌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시대정신과의 괴리를 좁히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이 단순히 민형사적 일반 재판과 같을 수는 없다. 사법 작용의 하나가 분명하지만 고도의 정치 작용이라는 주장도 쉽게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정치작용이냐는 것이다. 헌법 규정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헌재의 기능은 이런 추상적 법규를 헌법 정신에 입각해 해석하고 시대정신에 맞게 구체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대정신도 바뀌고 사회통념도 달라진다. 간통죄가 합헌에서 위헌으로 돌아선 것은 그런 사정을 잘 보여 준다. 헌법재판이 정치성을 띤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지, 주고받는 흥정과 여의도식 뒷거래라고 하는 저급한 현실 정치를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헌법재판소법 제4조가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또 헌법 제112조 2항과 헌법재판소법 제9조가 똑같이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는 것 역시 같은 취지다. 헌법재판은 정치 작용이지만 정치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 인사들 중에는 헌재가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은근히 헌재를 압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야당 대선주자가 “헌재가 그동안 국민이 보여준 압도적 탄핵 여론을 존중해서…”라고 말한 것이나 촛불이나 태극기 시위를 여론이라고 강변하는 정치권의 주장들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헌재가 판단을 내리는 근거로 들쭉날쭉한, 그리고 시류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여론을 감안한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이는 헌법재판이 염두에 둬야 하는 정치작용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헌재가 헌법 정신에 입각해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뿌리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신중에 신중을 더한 판결이 내려질 때라야 국민도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요구되는 복종이라면 누구라도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오늘 탄핵심판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사법 정의가 제대로 서고 정치도 더욱 성숙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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