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어제 피터 나바로 미국 무역위원회 위원장이 실물경제협회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을 밝혔다. 나바로는 이 자리에서 “외국산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하는 대신 더 많은 기업이 관련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조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국내 공급망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독일은 제조 인력이 20%나 되지만 미국은 8%에 불과하다며 제조 인력도 키우겠다고 했다. 한국이나 베트남 인도 등 무역적자를 만들어내는 국가를 일일이 나열하기도 했다. 삼성과 LG를 무역 부정행위 기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다운 연설이었다.
나바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시절 유일한 교수 출신 캠프 참가자였다. 트럼프가 그의 책을 읽은 게 계기였다. 미국 근로자들이 글로벌리즘으로 많은 피해를 겪은 사례를 모은 책이다. 나바로는 특히 중국을 비판했다. 중국이 미국인들의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고 경제를 수렁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미국 제조업을 혁신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뛰어들겠다고 했다. 물론 철저한 보호무역을 통한 성장 패러다임이다. 트럼프는 그에게 기회를 줬다.
“미국 안에서 제품 조달 생산”
하지만 미국 경제학계에선 나바로의 ‘보호무역을 통한 성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세계 경제가 이미 글로벌 공급망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향상도 글로벌 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 갖춰지지 않고선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는 연구도 많다. 더구나 제품 공정과 설비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오픈 IoT 체제인 프리딕스는 글로벌 공급망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글로벌 공급망 없이는 ‘스타 대기업’도 만들지 못한다. 스타 대기업은 브랜드 가치와 과감한 혁신이 생명이다. 혁신을 이끌기 위해선 초일류 해외 소재나 부품업체들과 연계해야 하는 게 절대적이다. 자유무역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미국 학계의 시각이다.
글로벌 공급망은 파괴 못 한다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무역에 노출된 국가가 한국이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이득을 가장 많이 본 국가라는 평도 있다. 정보기술(IT)이나 수송 수단 발달의 혜택도 많이 받았다. 각국의 인건비나 원자재 동향에 대한 정보 수집도 세계 최고다. 기민하고 과감한 한국적 의사결정 체계가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중간재의 40%를 한국에서 수출하는 게 그 결과다. 이제 단순 소재 부품 생산에서 연구개발이나 기획 전략까지 수출하고 수입한다.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트럼프와 나바로의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 체계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IoT 시대로 접어든 상황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점점 뻗어 나가는 환경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글로벌 소싱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오픈 IoT에 많은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나바로의 보호무역 정책은 정치적 슬로건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벌써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글로벌 사슬이 국가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시대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위기의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글로벌과 도전의 DNA를 발휘할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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