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화장품·면세점 등 65개 종목서 시총 28% 사라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확장판', '북핵 위험'보다 파급력 커
전문가 "보복 장기화 대비해야"
[ 나수지 기자 ] 중국이 한국 경제와 증권시장의 새로운 ‘코리아 디스카운트’(펀더멘털 이하로 평가절하 받는 현상)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피해 예상 업종의 시가총액이 최근 반년 만에 27조원 ‘증발’했기 때문이다. ‘차이나 리스크’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 등 기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에 비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타격을 주고 있어 주목된다.
◆충격파, 화장품 면세점 엔터 순
5일 한국경제신문이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엔터테인먼트·화장품·여행·면세점·레저 등 업종의 65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한 지난해 7월8일 이후 약 6개월간 이들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약 27조4968억원(시총의 28%)이 사라졌다.
화장품, 면세점·레저 업종의 시가총액 감소폭이 가장 컸다. 중국 정부가 자국 경제에 영향이 작은 문화·관광 부문에서 경제 보복을 시작하고 있어서다. 22개 화장품 상장사 시총은 지난해 7월8일 이후 22조6185억원(34%) 줄었다. 뒤를 이어 면세점·레저 업종 10개사 시총은 같은 기간 2조8220억원(18%), 엔터 업종 30개사 시총은 2조1018억원(15%) 감소했다.
◆“북 도발 땐 며칠 뒤 회복됐는데 …”
차이나 리스크는 북핵 실험 등 기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보다 충격파가 더 크다는 진단이다. 과거 북한의 도발이 있더라도 며칠 뒤면 주가가 회복되곤 했는데 이번 차이나 리스크는 다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이어질 때마다 관련주 주가가 급락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의 중국 의존도가 전체 수출의 25%에 이르는 데다 교역 관련 이슈의 민감도가 한·중 간에는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국내 수출기업의 제2 내수시장 역할을 맡고 있는 현실이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한국 주식시장 급락은 안보를 위한 결정이 증시에 부담이 됐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확장판”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9배 후반 수준인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차이나 리스크로 인해 9배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는 상장사 이익으로 주가지수가 역사상 전고점을 돌파할지 주목받고 있지만 때아닌 중국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드 후폭풍 장기화 우려
‘사드 후폭풍’의 해소 시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1차 관문은 오는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다. 회담에서 양국 정상 사이에 우호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사드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음달 발표될 상장기업들의 1분기 실적도 주목거리다.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기업 펀더멘털과 무관하다는 낙관론이 있는 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란 비관론도 존재한다”며 “1분기 실적이 악화된 것으로 나온다면 주식시장에 한 번 더 큰 충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상회담 등으로도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리는 오는 10월까지 경제 보복이 지속 내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5년 만의 당 대회를 앞두고 있는 시 주석이 사드 배치를 빌미로 반한감정을 자극해 국내 여론 집결을 유도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적어도 연말까지는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경제 보복 조치가 산발적으로 튀어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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