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대선주자라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세를 외치고 있다. 최우선 타깃은 법인세다.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실효세율을 높이자는 주장에는 대선주자 간 이견도 없다. 소득세와 상속세를 모두 올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주말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합동 토론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고소득자의 소득세 세율을 높이고 고액 상속 체납에 대한 증세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소득 과세 강화 방침도 내비쳤다. 그는 우선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그래도 부족하면 법인세 명목세율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30%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는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지만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실효세율 인상엔 동의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법인세 세수비중이 5위권으로 높다는 점 등은 아예 참고자료조차 아니라는 주장들이다. 더구나 세계의 대부분 나라들이 세금을 인하하는 중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각국이 경쟁적으로 법인세 인하에 나서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법인세를 35%에서 15%로 내리는 획기적인 감세를 포함, 근본적인 세제개혁을 천명하고 나섰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최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업 감세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올해 기업 세부담을 3500억위안 정도 줄이고 기업에 대한 각종 비용 징수도 2000억위안 낮추겠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 상속세를 없애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미국 역시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런 글로벌 감세 추세에 역행한 채, 나홀로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에 갇혀 증세 프레임에 매달리고 있는 게 바로 대한민국 정치권이다. 증세 공약을 통해 부자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질투를 자극해 표를 얻어보겠다는 얄팍한 계산과 다름이 없다. 세제에 대한 이해도, 경제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저 정치적 잇속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무책임의 전형이다. 세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개탄할 일이요, 알면서도 국민을 속이고 있다면 그 위선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세금은 시공을 초월해 존재해 왔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납세가 불가피하다. 헌법에 국민의 의무 중 하나로 납세 의무가 명기돼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세금은 국가 재정 유지를 위한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목적세처럼 국가가 특정 사업을 위해 세금을 거두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것이고 세금은 적을수록 좋다. 세금은 국민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거둬 가는 대표적 공권력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특히 정치권에선 세금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증오, 분노, 질투를 부추기거나 보상하는 수단으로 변질돼 버렸다.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이 세금의 기본적인 기능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증세를 외치는 이면에는 바로 세금으로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 놀이를 해보겠다는 포퓰리즘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세금에 소득 재분배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득세 상속세 등이 누진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기능일 뿐, 세금의 본질일 수는 없다.
민간의 영역으로부터 정부 부문으로 유동성을 흡수해 가는 세금은 그만큼 민간의 투자나 생산활동, 소비 등을 위축시킨다. 법인세를 1%포인트 올리면 국민의 실질소득은 0.5%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세금을 적게 거두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앞에선 남고 뒤에선 밑진다는 것은 바로 증세 주장을 일컫는 말이다. 세금을 많이 걷을수록 나라는 가난해진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기를 획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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