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스토리 '젊꼰'을 아시나요?
대학·직장 '젊은 꼰대'의 탄생 & 발견
마케팅 회사 신입사원 막내 김모(27) 씨. 최근 식사 중 한살 위 직장 상사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김씨가 혼난 이유, 아래 그림을 보고 맞혀보세요.
눈치채셨나요. 정답은 2번.
김씨가 점심시간 밥 대신 욕을 먹은 이유는 수저 가운데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수저 가운데를 잡으면 더러운 게 입에 닿을 수 있다"는게 '갈굼'의 요지입니다. 물잔, 소주잔에도 똑같이 적용된답니다. 생소한 예의범절입니다.
김씨 상사처럼 자기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모습. 이른바 ‘꼰대’의 모습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은 꼰대를 이렇게 정의힙니다.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그렇다면 스물여덟 3년차 직장인인 김씨의 상사는 꼰대일까요, 아닐까요. 늙은이도, 선생님도 아니지만 꼰대 행위 이른바 ‘꼰대질’을 일삼는 이런 분들을 가리켜 탄생한 신조어가 있습니다.
'젊꼰', 젊은 꼰대의 줄임말입니다. '젊꼰'은 중년 노년 꼰대처럼 꼰대질을 일삼는 어린 세대를 뜻합니다. 꼰대질이 나이의 문제가 아니란 겁니다. '노인 vs 청년' 같은 세대 갈등 사안이 아니라 '청년 vs 청년' 구도입니다.
김씨는 난생 처음 '수저 젊꼰'에 마음을 다쳤습니다. "돈 말고 사람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달을 끝으로 3개월 만에 회사를 떠납니다. 청년끼리 같은 시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도 모자란 판에 한살 위 상사가 열살 위, 스무살 위 꼰대들이나 할 것 같은 꼰대질을 하니 말입니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이 김씨처럼 1년 내 직장을 관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직·직무 적응 실패(49.1%)'. 쉽게 말하면 조직 문화에 대한 이질감입니다.
대학 젊꼰
새학기를 앞둔 이맘때면 대학에서도 '젊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젊꼰'들 단골 무대입니다. 술을 강요하는 문화부터 폭언에서 성희롱까지 다양한 ‘군기잡기’가 등장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대학별 ’대나무숲(익명 제보 게시판)’은 바람잘 날이 없습니다. 지역, 나이, 학과를 막론하고 다양한 제보가 이어집니다. 공통적으로 신입생들은 군기를 잡는 행위를 전형적인 꼰대문화로 바라봅니다.
특히 신입생으로 설레임 대신 수치심, 부당함을 느끼는 사례는 여전히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몇몇 예술 대학 신입생 ‘여장’ 행사가 대표적입니다.
신입생 때 여장을 했던 예체능 출신 이모(27) 씨는 “여장을 할 때면 남자 신입생 한명도 빠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여자 선배 대여섯명이 달라붙어 분장을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남자선배들이 자신들도 신입생 때 거쳤기에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며 “동기 대부분이 맨 정신으로 무대에 올라갈 자신이 없어 술에 취한 채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여장을 강요하는 선배들의 주된 논리는 ‘나도 겪었으니, 너도 겪어야 된다’ 입니다. 실제 이들 학과는 10년 넘게 신입 남학생을 대상으로 여장이 최근까지 자행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전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습이 될 수 있는 단편적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씨 역시도 고학년 선배가 되었을 때 신입생 여장을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 일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돌이켜보니 여장도 지난 추억이라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과거 기억을 미화해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심리를 말합니다. 졸업 후 자신은 후배들에게 스스로를 좋은 선배였다고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직장 젊꼰
식품회사 대리를 갖단 배모(31) 씨는 차장, 부장 선배들 사이에서 속칭 ‘에이스’로 불립니다. 업무 처리가 특출나서가 아닙니다. 신입생을 잘 ‘교육’해서입니다. 여기서 교육은 고참선배들이 보기에 신입 사원 '군기'를 잘 잡는다는 뜻입니다.
배 대리는 한편으론 고민입니다. 윗분들 심기를 맞추자니 아래 신입사원 예의범절을 다잡아야 합니다. 그만큼 후배와는 멀어집니다. "배 대리, 완전 젊꼰이야" 같은 뒷담화도 들립니다.
배씨는 “회사 서열상 임원들과 신입 사원 사이 중간다리 역할을 맡고 있다"며 “위(상사)에서 자꾸 신입사원들 예의가 없다고 눈치를 준다”고 해명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임원들이 꼰대의 표본으로 나오다보니 실제 신입 사원 눈치를 본다”며 “앞에서는 신입들에게 미소를 보이고 뒤에서는 교육하라 종용하는게 문제"라고 억울해합니다.
일찍이 우리는 교과서에서' 젊꼰'을 접했습니다.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엄석대입니다. 배씨는 한병태와 닮아있습니다. 힘(높은 직책)을 가진 엄석대(상사)에게 저항 대신 복종을 택합니다. 그 덕에 편안한 학교(직장)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현실은 한병태와 달리 배씨처럼 작은 저항도 없이 순응하기도 하며, 곧장 엄석대가 되기도 합니다.
젊꼰의 탄생
'젊꼰' 비아냥을 자주 듣는 회사원 강 모씨(27)도 할 말은 많습니다. 그는 "후배 걱정해서 하는 잔소리인데, 말할 때마다 '젊꼰', '젊꼰'하니 마음이 움츠려들더라"라며 "상대에 애정이 있으니 듣기 싫어하는 소리도 하는 건데, 엇나가려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항변합니다.
꼰대질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심각한 '젊꼰'과 안 그런 '젊꼰'이 있는거죠. 바른 말이라도 상대방이 듣기 싫어한다면 안 하는게 맞을까요. 너무 많은 배려는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심각한 '젊꼰'은 오지랖이 너무 넓습니다. 비슷한 나이이고, 비슷한 경험을 하더라도 훈계조가 남다르죠. 한살 후배, 한직급 아래, 한계급 밑 청년에게 교수보다 부장보다 더 피곤한 존재입니다. 앞서 회사를 관두는 신입사원 김 씨처럼 '젊꼰'은 청년 세대 간 '피폐함'을 낳죠.
심각한 '젊꼰'의 또 다른 특징은 타인 훈계는 잘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열불을 낸다는 점입니다. 타인에겐 엄격한데, 자신에게만 관대하다면 '젊꼰' 기질이 다분한 겁니다. 특히 이런 '젊꼰'이 계급 직급 등 완장을 차면 그 정도는 더 심해집니다. 군대처럼 말입니다.
젊꼰의 발견
씨티그룹이 지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도시거주 18~24세 청년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 62%는 ‘원하는 커리어에 성공할 수 없다’고 비관했습니다. 이는 뉴욕, 도쿄, 홍콩, 타이베이 등 비교 대상 25개 도시 중 꼴찌였습니다.
직장인 44%는 '회사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한 지난 1월 한 취업포털 조사도 있죠. 특히 사원급(50.4%)이 가장 낮았습니다. 이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한 건 '높은 연봉(40.9%)'보다 '마음 맞는 동료 (41.9%)'였습니다.
젊은 엄석대, 그들은 누구일까요. 요즘 '젊꼰'이 대학이며, 회사며 여기저기 부쩍 많다는 하소연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보수화, 청년 세대의 경제적 억눌림, 사회적 자존감 저하 등이 '젊꼰'이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심리전문가들도 있죠.
뉴스래빗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젊꼰' 역시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에 괴로워 합니다. 똑같이 인턴, 자격증, 공모전, 대외활동에 목 매던 청년이죠. 조금은 먼저 입학을 하고, 앞서 취업을 하면서 세상 풍파와 모진 현실을 먼저 경험한 이들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 속에서 어릴 적 자신이 싫어했던 어른 '꼰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중요한 건 청년세대의 고난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청년이라는 점입니다. 청년을 보듬고 함께 연대하는 원동력도 청년에게서 나옵니다. '젊꼰'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청년 세대 단결력도 힘이 점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꼰대질은 나이가 아닌 행동 양식의 문제입니다. 타인의 꼰대 기질을 귀신같이 지적하면서도, 내 안의 '젊꼰'은 잘 자각하지 못한다는 게 그 핵심입니다. 자신이 꼰대 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설문지도, 테스트도 아닙니다.
가까운 선배, 후배에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오늘 무심코 내뱉은 말, 뜻없이 한 행동이 가까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지 않았을지 생각해보세요. '젊꼰'을 벗어나는 첫 걸음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꼰대 기질을 발견하고, 자제하고, 상대방을 더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
#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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