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을 즐기는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_ 파스칼
[편집자 주] “망나뇽!” 누군가 거리에서 외친다. 짜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손가락을 튕겨댄다. 사방에서 탄성과 탄식이 뒤섞인다. 이들은 모바일게임 ‘포켓몬고’ 이용자들이다. 어릴 적 텔레비전 속 포켓몬에 눈을 못 떼던 어린이는 손가락으로 포켓몬을 잡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네 부장님.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심각한 뉴스라도 보는 것일까. 그는 모바일게임 ‘리니지2:레볼루션’ 속 자동사냥 중인 자기 캐릭터를 보고 있다. 학창시절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던 그는 이제 ‘린저씨(리니지와 아저씨를 합성한 신조어)’라 불린다.
일상이 되버린 스마트폰처럼 게임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작년 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6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모바일게임 이용률은 60.2%다. 국민 절반 이상이 모바일게임을 한다. 어린 세대만 즐긴다는 말도 옛말이다. 이용자별로 30대가 27.9%로 가장 높다. 이어 20대(21.3%), 10대(18.5%), 40대(16.1%), 50대(13.5%), 60~65세(2.7%)로 순이다.
빛과 어둠
사람이 모이니 돈도 모였다.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액은 작년 3조8905억원으로 2014년(2조9136억원)부터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작년 12월 출시한 리니지2:레볼루션이 출시 한달만에 2060억원 매출을 터뜨렸다. 덕분에 올해 모바일게임 시장도 흥행 가도다.
모바일게임 시장이 빛나는만큼 어둠도 짙어지고 있다. 어둠 역시 돈 문제다. 현재 구글플레이 및 앱스토어 상위 100위 게임은 모두 ‘인앱결제’(이용자가 무료 다운로드 후 게임 내 유료 상품을 구매)가 주력 수익모델이다. 문제는 이 유료 상품들이 과도한 현금 결제, 소위 '현질'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취업준비생 송모씨(27)은 6개월 간 약 200만원을 여러 모바일게임에 쏟아부었다. 취업 스트레스를 주로 게임으로 풀면서다. 김 씨는 “가상 게임 세계에서라도 강한 아이템으로 승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위 순위을 유지하려고 돈을 썼지만 금세 더 좋은 아이템이 출시됐고, 또 다시 사는 데 허무했다”며 후회했다. 그는 최근 모바일 게임을 모두 삭제했다.
게임회사는 유료 아이템을 소위 확률형으로 팔고 있다. 확률형, 일종의 뽑기(랜덤)다. 아이템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쓰임새도 다르다. 하지만 사용자는 A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A만 구매할 수 없다. 일단 아이템을 사야한다. 문제는 그 아이템 안에 내가 원하는 무기가 들어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뽑기다.
사실 아이템은 게임을 열심히 하다보면 구석구석에서 무료로 발견된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게임을 들여야한다. '아이템 현질'의 유혹은 이렇게 시작된다. 타인보다 빨리 그리고 더 강해지고 싶은 심리. 유저들은 그렇게 지갑을 연다. 하지만 이내 더 강한 아이템이 보인다. 역시 시간을 들이기 아깝다. 다시 더 강한 아이템이 들었다는 꾸러미를 구매한다. 담배마냥 끊기 힘든 현질의 악순환은 강화된다. 게임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였던 확률형 아이템이 요즘 모바일게임 사행성 조장의 주범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같은 확률형 게임 아이템을 사는데 한도 설정을 둬야하는지는 당국과 게임업계 간 오랜 갈등 사안이다. 고스톱이나 포커 같은 도박류 게임은 월 50만원 수준 밖에 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모바일 확률형 아이템 게임은 아무 한도가 없다. 게임업계는 성인이 문화 콘텐츠인 게임 비용을 쓰는 한도를 법으로 제한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규제당국은 확률형 뽑기의 사행성을 크게 우려한다. 도박의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도박과 확률
직장인 김모씨(31)는 지난 1년동안 약 300만원을 모바일게임에 사용했다. 송 씨는 “취미 활동으로 월 20만원 이상 꾸준히 사용했다”며 “아이템이 랜덤으로 나오다보니 많은 돈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돈을 더 쓸수록, 쓴 돈이 아까워 게임을 끊을 수도 없다. 이른바 록인(lock in, 묶어두기) 현상.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게임에 접속한다.
모바일게임 속 아이템 ’뽑기’에 질린 이용자는 이들만은 아니다. 작년 8월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조사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게임이용자 인식조사’에서 게임 이용자 90.6%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이어 90.3%는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 등 정보 공개를 법제화하는데 찬성했다.
게임업계 종사자도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꼬집는다. 현직 모바일 게임 개발자인 박모씨(가명)는 전화 인터뷰에서 “2008년부터 게임업계가 자율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상 밥그릇 문제라 여의치 않다”고 귀띔했다.
그는 게임 내 뽑기 시스템 개발 원조인 일본도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 소비자청은 2012년 5월 휴대폰 게임 속 아이템 구매 방식인 ‘컴프 가차’(컴플리트 가차의 줄임말)을 중단시켰다. 컴프 가차는 ‘뽑기’(가차)로만 얻을 수 있는 특정 아이템을 모두 모아야만 더 희귀한 아이템을 주는 시스템이다. 컴프 가차는 일본 휴대폰 게임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뽑기(가차) 방식이 지나친 사행성을 조장했다. 당시 일본 소비자청은 뽑기 아이템 판매가 경품표시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특정 아이템을 얻는데 쓰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해 아이템 구매에 150만엔(약 2145만원) 이상을 소비한 40대 주부 관련 보도 등이 이어졌다. 관련 소비자 불만접수도 2010년 5건에서 2011년 58건으로 증가한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 게임 업체 6곳(GREE · DeNA · NHN재팬 · 사이버에이전트 · 드왕고 · 믹시)은 소비자청의 결정을 받아들여 컴프 가차 판매를 중단했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확률형 아이템 판매 및 구매가 모바일게임 인기를 타고 더 번지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자 우리 국회도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 판매 규제를 골자로 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2건을 발의됐다. 7월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습득률 등 정보 공개를 규정하는 개정안, 10월 획득 확률 10% 이하 아이템 판매 게임을 청소년이용불가로 분류하자는 안이었다. 이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정치권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은 15일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 주요 게임사 모임인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가 마련한 자율 강령이다. 이번 강령에는 희귀 아이템 획득 확률을 더 선명히 공개하고, 이용자가 게임 내에서 확률을 더 쉽게 확인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외부평가위원을 위촉해 강령 준수를 감독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자율 강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2015년 두 차례 자율 규제안을 내놓았지만 시자 반응은 싸늘했다. 여러 아이템 획득 확률을 뭉퉁그려 공개해 특정 아이템 확률만 선명히 알 수 없었다. 이마저도 어디에 공개했는지 찾기 어려웠다.
게임 개발자 박 씨는 컴프 가차와 같은 방식의 아이템 판매는 어디나 교묘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게임업계는 상위 1% 현금 결제 유저들이 매출 90%이상을 발생시키는 비정상적 구조"라며 "일본 같은 정부 차원의 규제 이전에 게임업계가 스스로 내부 문제점을 해결하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확률론을 확립한 근대 프랑스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도박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박을 즐기는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일본 소비자청이 '컴프 가차' 판매를 중단시킨 또 다른 이유는 미성년자 결제 부작용이었다. 성인 뿐만 아니라 중학생이 며칠만에 10만 엔(약 140만 원)을 현질에 쏟아부었다는 보도가 일본 사회 공분을 샀다.
미성년 아이템 결제 부작용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실정법 상 온라인 아이템을 결제할 수 없는 국내 미성년을 대신해 아이템을 대리 구매해주고 높은 수수료 받아챙기는 업체가 늘고 있다. 네이버, 다음, 구글 등 검색창에 '모바일 대리 결제'만 치면 수십~수백 업체가 버젓이 사업자등록번호를 내걸고 미성년 아이템 결제를 대행하고 있다. 14일 모바일 게임의 초상② 에서 이 내용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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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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