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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주식이다] "투자자보다 회사 이익이 먼저"…증시 불신 키운 '그들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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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시장을 망치고 있나


[ 송형석/임도원/윤정현 기자 ]
주식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는 국내 증시에 불신을 야기한 ‘공공의 적’들이 등장한다. 우선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뒷북 보고서’를 내놓기 일쑤고, 전망이 안 좋은 종목을 살 것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업 투자자 관리(IR) 담당자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정보를 감추거나 늦게 알리는 일이 잦다는 게 응답자들의 인식이었다. 프라이빗뱅커(PB)를 못 믿겠다는 답변도 많았다. 고객 수익률에는 관심이 없고 수수료만 밝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익명을 전제로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직군의 사람들을 복수 인터뷰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우리 몸값은 기관평가가 결정…기업분석보다 영업에 더 신경

우선 애널리스트의 하루 일과를 말씀드릴게요. 출근 시간은 오전 7시입니다. 간밤의 해외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자료를 챙겨 내부 아침 회의에 참석하죠. 그다음엔 전화를 돌립니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요. 수십통의 전화를 돌려 차별화한 정보를 전달해야 고객인 펀드매니저와 약속을 잡을 수 있거든요.

오후엔 장 흐름을 살피면서 고객 요청자료를 정리합니다. 오후 3~4시에는 세미나를 가거나 기업 탐방을 위해 회사를 나서고요. 보고서는 언제 쓰느냐고요? 보통 직장인 퇴근시간(오후 6~7시) 이후에야 짬이 납니다. 새벽까지 다음날 배포할 보고서를 쓰는 일이 다반사지요.

애널리스트의 능력은 어디서 판가름 날까요. 경제를 분석하고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리서치센터는 증권사의 법인 영업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보고서 질이나 정확성만큼 고객의 수익성과 사후 평가도 중요해요. 직접적으로 애널리스트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후자죠. 그 성과는 곧 연봉으로 이어져요. 최소 7000만~8000만원에서 많게는 5억원 이상까지 연봉은 천차만별이에요.

문제는 우리의 분석 결과가 고객인 기관투자가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종목에 대해 매도 리포트를 내면 평가손이 커질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런 상황이 예견되면 악재가 될 만한 정보를 미리 살짝 흘려주기도 해요. 물론 해서는 안 될 일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이런 정도로 ‘관리’하지 않으면 기관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상장사에도 애널리스트는 ‘을’이에요. 우리가 평가하는 대상이지만 다른 쪽에선 채권 발행 건 등으로 잘 모셔야 하는 법인 고객이기도 하지요. 2015년엔 한 상장사 임원이 부정적인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에게 “당장 보고서 내리고 사과문 올리라”고 윽박지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하나투어 IR 담당자가 애널리스트에게 ‘탐방 금지’를 운운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매도’를 외칠 수 있을까요. 관계가 틀어지고 기업 탐방 길이 막히면 답답한 건 애널리스트예요.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 일색의 보고서에 불만이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상황을 감안해 투자 의견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상장사 IR 담당자
'경영정보 눈치껏 공시하라' 윗선 지침 거역하기 힘들어

인터넷 주주 게시판에 들어가면 회사를 주가조작 세력인 것처럼 매도하는 글이 많아요. 대부분 근거가 없고 사실도 아니에요. 일일이 답글을 달 수도 없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주식 투자는 기본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인데 투자자 본인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화해서 쌍욕하고 회사 찾아 와서 ‘목 매달아 죽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두는 IR 담당자도 있어요.

한미약품 늑장공시 사태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요.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된 다음날 이 회사 IR 담당자는 오전 8시부터 한국거래소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일부러 장 마감 후에 공시했다는 오해를 뒤집어썼지요. “만만한 게 우리구나” 하는 느낌에 서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도 많아요. 편법으로 공시 규정을 피해가는 경우가 없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상장사는 자기자본의 10% 이상을 시설투자 하려면 사전에 공시해야 해요. 그런데 대규모 시설투자를 한다고 공시하면 회사 자금 부담에 따른 우려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 한 번에 할 시설투자를 두 차례 이상으로 나눠서 집행합니다. 투자자들은 뒤늦게 재무제표를 통해서나 시설투자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다른 예도 있습니다. 세무조사를 받아 과징금을 추징당하면 원칙적으로 공시해야 해요. 하지만 일부 상장사는 이런 경우 공시하지 않습니다. 추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낸 뒤 결과를 기다리지요. 소송에서 이기면 넘어가는 것이고 지면 공시하겠다는 계산입니다.

거래소 조회공시에 거짓으로 답하는 경우는 주로 언론 보도와 관련이 있어요. 상장사가 합병을 추진할 때 이 같은 사실이 미리 언론에 보도되면 거래 자체가 깨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조회공시에 대한 답변을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해요. 나중에 공시 위반에 따라 관리종목 지정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합병이 무산되는 것보다는 이익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물론 중요한 경영정보를 이렇게 불완전하게 공개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앞으로 바꿔나가야지요. 하지만 당장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IR 부서는 회사 내에서도 그다지 힘이 없거든요. 일부 경영진은 “눈치껏 하라”고만 할 뿐, 투자자와의 소통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금융사 PB
고객 수익률 떨어져도 수수료 비싼 상품 팔아야

한국 주식시장이 오랫동안 박스권 증시에 갇혀 있으면서 투자자도 더 이상 주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개별 종목이나 금융상품을 추천하기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그동안 권한 상품 중에 수익률이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들이 많아 면목이 없지요 뭐.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PB일지라도 저금리와 박스권 시장에서 남다른 수익률을 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연 4~5% 정도의 수익이라도 내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우리가 수수료만 밝힌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건 알아요. 자업자득이죠. PB들이 수수료가 비싼 상품을 파는 데 열을 올리는 건 성과급 시스템 때문입니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입으로 얻은 이익 중 30~50%를 PB에게 뚝 떼줘요. 선취 수수료 1%를 받는 사모펀드 100억원어치를 팔았다고 가정해보죠.

증권사는 수수료로 벌어들인 돈의 30~50%에 해당하는 3000만~5000만원을 곧바로 PB에게 입금합니다. 영업 독려 차원입니다. 주식 중개를 얼마나 했는지도 성과급에 큰 영향을 줍니다. 100억원어치의 매수, 매도 주문이 나오면 PB 몫으로 1500만원 정도가 돌아갑니다. 대형 증권사는 성과급 지급 기준에 차이가 있습니다. 수수료 수익이 얼마인지, 관리하는 고객 자산이 얼마나 늘었는지 등을 두루 따집니다.

수수료 수입이 돈벌이와 직결되다 보니 아무래도 선취 수수료를 두둑하게 받을 수 있는 상품을 권하게 됩니다. 브라질 채권 같은 상품이 좋지요. 억 단위로 투자하는 사례가 많고 수수료도 투자금액의 2~3%에 달하니까요. 국내보다는 해외, 공모보다는 사모상품을 권하는 PB가 많은 것도 같은 이치예요.

“수수료는 비싸지만 기대수익률이 높다” “선취로 수수료를 떼는 것이 장기 투자엔 오히려 더 유리하다”와 같은 논리로 고객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주식이나 상품을 갈아타라는 조언도 많이 해요. 고객이 주식을 거래하거나 새 상품에 가입해야 수수료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식이나 상품으로 연 5% 정도 수익이 나면 문자나 전화로 환매를 조언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이제 PB들도 예전처럼 손님들 수수료만 빼먹는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어요. 수수료가 아니라 고객 수익률로 PB를 평가하겠다는 회사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장기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정착될 것이라고 봐요.

송형석/임도원/윤정현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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