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KT
절름발이 ICT생태계 초래한 뼈아픈 이유
자율경영 보장, 글로벌 경쟁 대비케 해야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최근 KT에 대한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와 사업운영 개입 사실이 밝혀졌다. 오래전에 민영화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을 임명하고, 사업에 불합리하게 관여하는 구태가 계속돼왔다는 것이다. 최근 경영진 선임을 앞두고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KT는 국영기업이던 한국통신을 2002년 민영화한 기업이다. 한국 국토 전역에 걸친 정보통신 인프라를 보유하고 이동통신, 인터넷, IPTV 등 폭넓은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통신사업자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경쟁 통신사업자면서도 KT 네트워크의 일부를 통해야만 국가 전역 정보통신 서비스가 가능하다. KT는 이미 사업 수익성을 상실한 공중전화와 유선전화 서비스를 유지하는 보편적 통신서비스 제공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다. 매년 대량의 유·무선 통신네트워크 장비와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매입하는 기업이기에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제조산업과도 연관성이 크다. 그러니 KT는 한국 정보통신 생태계의 정점에 서 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지능정보시대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선도기업으로서의 역할도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KT의 CEO를 포함한 경영진은 정부와 정치권의 상황에 따라 빈번히 교체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경영진의 위치가 불안정하고 사업 운영에 부적절한 외부간섭을 받고 있다면 어찌 정상적인 경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단기사업에만 내몰리면서 무분별한 경쟁상황을 촉발시켜 결국엔 국내 ICT 생태계를 왜곡시키는 경영행태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영화 초기 KT의 독자적인 섣부른 사업적 판단이 한국 정보통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03년 정보통신부는 당시 첨단 3세대(3G) 이동통신을 넘어서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차세대 (4G) 이동통신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통신사업자, 장비제조사, 연구계를 포함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책연구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2005년 경영진이 바뀐 KT는 돌연 삼성전자와 컨소시엄을 탈퇴하면서 그때까지 이어지던 국내 기업 간 협력 관행은 중단된다. 이후 KT와 삼성전자는 한국형 4G 이동통신기술인 와이브로(WiBro)를 개발했지만 국내시장 확산과 해외 진출이 어려워지면서 결국엔 좌절되고 만다. 이 틈에 한국의 이동통신시장은 해외 4G LTE 장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3개의 통신사업자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외 LTE 장비와 솔루션을 도입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하고 있다.
결국 통신사업자들은 자체 연구개발 동기를 잃어버린 채 가입자 확보 경쟁에만 몰두하게 됐고, 국내 통신장비산업은 기술개발의 방향을 잃고 위축됐으며,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국내 ICT 제품이 이동통신시장으로 진입하는 것마저 제약받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는 국익의 손실이고 양질의 일자리 상실이며, 미래 희망의 단절과 다름없다. 민영화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난 근시안적인 KT 경영의 단면 그리고 이를 방관했거나 동조한 정부가 국가 ICT 생태계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주는 쓰디쓴 경험이 아닌가.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컴퓨팅이나 인공지능(AI) 서비스도 네트워크 위에서 동작하는 것이고 4차 산업혁명도 강건한 네트워크 위에서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니, 국가의 건실한 네트워크와 이를 운영 관리하는 통신기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 바탕이다. 그러나 해외 기술에 의존한 채 뿔뿔이 나뉘어 국내 시장점유율 싸움에만 몰입하는 통신기업으로는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 정부는 KT를 향한 정치권의 불합리한 관여를 차단해 민간 통신기업으로 회복시킨 뒤 KT가 한국 정보통신계의 중심으로서 국내 ICT 생태계 요소들 간 공생적 협력관계 회복에 앞장서도록 권고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