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교수감금’하자 교직원 ‘빈집털이’ 촌극
본관 점거인원 1000명→20명으로 동력 상실
“학내 민주주의 제고 기여한 학생 시위, 떼법으로 전락”
학생들이 107일째 점거 중인 서울대 본관은 24일 의자와 책상으로 막혀있다. 학생들이 전날 저녁 만든 바리케이트다.
본관에 바리케이트까지 설치된 경위는 이렇다. 발단은 ‘교수 감금 사건’이었다. 서울대 총학생회 등에 소속된 학생 40여명은 전날 오후 2시 30분부터 서울대 학사위원회(학장단 회의)가 열린 행정대학원 2층 회의실 바깥 출입구를 봉쇄했다. 그러면서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회의실에 있던 박찬욱 교육부총장과 각 단과대학 학장, 대학본부 처장 등 서울대 학사위원 20여명은 4시간가량 감금됐다.
그 사이 교직원 10여명이 학생들이 자리를 비운 본관에 들어가는 ‘빈집털이’가 벌어졌다. 이에 학생들은 감금을 풀고 황급히 본관에 되돌아왔고, 교직원들과 거친 말다툼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비겁하다”고 외쳤고, 교직원들은 “불법점거를 그만하라”고 응수했다. 오후 7시께 교직원들이 본관에서 물러난 이후 학생들은 바리케이트를 쳤다. 이같은 상황을 지켜본 한 학생은 “스타크래프트도 아니고 도대체 뭔가 싶다”며 “학교나 학생들이나 한심할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불통(不通)’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서울대 시흥캠퍼스 반대 점거농성 사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점거농성은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학생들은 앞선 8월 서울대가 시흥캠퍼스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의미의 실시협약을 학생들과 논의 없이 체결한 것을 규탄했다. 초기엔 명분이 분명했다. ‘밀실협약’ ‘준비없는 협약’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상당수 공감대를 얻었다.
학내 민주주의를 개선시키는 데 역할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총장과 학생 대표가 매달 만나는 정례간담회가 새로 만들어지고, 시흥캠퍼스 추진단 및 서울대 내 심의기구인 평의원회에 학생들이 참가하는 개선안이 마련됐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 역시 “그간 학교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시흥캠퍼스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면서 점거농성은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점거농성이 일부 강경 운동권 학생들의 전유물이 되면서다. 학교 측의 제안에 공감한 학생들이 이탈하면서 점거 당일 1000여명에 달했던 점거 인원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20여명으로 줄었다.
남은 점거 학생들은 “총장 임명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기업의 돈으로 만들어지는 시흥캠퍼스가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주장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 때부터 학생들이 본관 내 공문서를 유출하고 서울대 공식행사장에 난입하는 등 시위 방식도 과격화됐다.
암묵적으로 학생들 편에 섰던 서울대 노조과 진보적 성향의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소속 교수들도 점점 마음을 돌렸다. 한 민교협 소속 교수는 “불통에 불통으로 응수하는게 답이 될 수 있나”며 “지금의 점거농성은 명분도, 정당성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지난 13일 점거 학생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본관에 바리케이트를 쌓으며 응수했다. 성 총장이 강조했던 ‘대화를 통한 해결’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대화는 사라지고 알력다툼만 남았다. 점거 학생들이 신입생들을 흡수해 농성을 장기화한다는 계획을 세우자 서울대는 신입생 학부모들에게 “시흥캠퍼스 점거농성에 참가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학생들이 점거한 본관 내 공간을 동아리방으로 분양하는 사업을 진행하자 학교 측은 점거학생들의 거주 공간인 1·4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의 난방과 전기공급을 끊었다.
“학내 민주주의를 위해 이뤄졌던 점거농성은 이제 명분 없는 떼법으로 전락했다. 학교는 다 큰 대학생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촌극까지 벌였다. 이게 한국 최고 지성이라는 서울대의 현실이다.” 단과대 학장을 지냈던 한 교수의 자조 섞인 말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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