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악성 미분양' 속속 팔려
2년째 텅텅 빈 딜라이트 스퀘어, 교보 입점 소식에 문의 급증
일산·광교에서도 '교보의 마법'
광교 월드스퀘어, 상가 매출 20%↑…고양터미널, 일산 대표상권으로
영화관 못지않은 집객효과
카페·맛집·미용실·애견숍 연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공간
[ 설지연 기자 ]
교보문고가 상권 활성화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죽어가던 상권이 교보문고 입점 후 유동인구 증가에 힘입어 활성화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책 판매를 넘어 쇼핑, 문화, 휴식, 사교 등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대형마트, 멀티플렉스 극장 등에 버금가는 ‘앵커 스토어’(상가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 중심 역할을 하는 핵심 점포)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망한 상가도 살려
서울 합정동 ‘마포한강푸르지오’ 1·2차 단지 내 상가인 ‘딜라이트 스퀘어’는 악성 미분양 상가였다. 2015년 10월부터 분양했지만 규모가 축구장 7개 크기(4만5620㎡)에 달하는 데다 지하 공간(지하 1~2층)이 많아 1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분양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달 대우건설이 교보문고 합정점(가칭) 입점 본계약을 체결한 뒤 임차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오는 4월 개점할 합정점은 합정역(지하철 2·6호선)과 연결되는 지하 2층 상가 전체(1만9830㎡)를 10년간 사용한다. 복도 시설 등을 제외하고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 약 9900㎡에 달해 서울 광화문 본점(5619㎡)보다 더 크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 253개 점포 중 124개(교보문고 포함)가 새로 입점하기로 했다.
정형근 대우건설 수도2영업소장은 “교보문고 입점이 발표나자 비어 있던 상가에 편의점, 은행, 카페, 음식점 등의 임차 문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에 들어선 주상복합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의 단지 내 상가 ‘광교 월드스퀘어’도 교보문고 덕을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교보문고 광교센터가 지하 1층(561㎡)에 들어서자 비어 있던 상가의 10~15%가량이 채워졌다. 월드스퀘어를 분양한 엠디엠플러스의 구명완 대표는 “교보문고 입점 후 인근 식음료 점포 매출이 15~20% 정도 늘었다”며 “광교뿐 아니라 수원시 내에 대형 서점이 드물어 유동인구가 늘어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고양 일산신도시에선 라페스타, 웨스턴돔, 원마운트 등 기존 상권을 제치고 고양종합터미널이 대표 상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작년 5월 교보문고 일산점이 롯데아울렛 고양터미널점 지하에 입점하면서 10~20대 젊은 층부터 가족 단위 수요까지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이곳은 2014년 화재가 발생해 지하 1층 전체가 비어 있었다. 풀무원이 임차해 복합음식문화 공간으로 만들면서 교보문고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재임대했다.
◆1인 가구, 남성, 어린이 수요도 흡수
대형서점이 키 테넌트(핵심 점포)로 부상하게 된 이유는 서점이 단순히 책 파는 곳을 넘어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어서다. 소비의 대상이 제품이 아니라 공간으로 바뀌며 기존에 쇼핑에서 소외됐던 1인 가구, 남성, 어린이 수요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교보문고 일산점은 ‘서점 같지 않은’ 분위기로 꾸며졌다. 책장 사이에 해리스커피, 카페자우 등 커피숍부터 햄버거·피자 등을 파는 ‘플라잉볼 익스프레스’도 있다.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을 놓은 라운지와 ‘독서바’도 마련돼 있다. 디자인 문구류와 음반 등을 파는 공간을 비롯해 어린이책 코너 옆에는 유아용품숍과 미용실 ‘준오 헤어’도 입점했다. 서점은 ‘대원어묵’ ‘아비꼬카레’ ‘삼백집’ ‘공수간’ ‘파파밸리피자’ 등 맛집들이 스트리트형으로 배치돼 있는 ‘마크트할레’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런 ‘라이프스타일형’ 서점은 일본 쓰타야 서점을 벤치마킹했다. 도쿄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장소로 자리잡은 다이칸야마의 쓰타야 서점은 교통이 불편한 도심 외곽에 있는데도 해외 여행객들이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인기다. 볕이 잘 드는 2층짜리 통유리 건물 3개동 사이사이로 나무가 심어져 있고, 카페 식당 문구점 카메라점 애견숍 수입가구점 피부미용클리닉 여행사 등이 밀집해 있다. 심지어 술을 파는 바까지 있다.
박희윤 모리빌딩 한국지사장은 “미국과 일본 대만 등에선 이미 반스앤드노블, 쓰타야, 청핀서점 등 거대한 서점이 복합상가의 앵커 스토어 역할을 해왔다”며 “서점이 식음과 쇼핑, 여행, 취미 등 모든 것을 취급하게 되면서 가장 큰 라이프스타일 정보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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