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X' 이론적 토대 제공 김관묵 이대 교수 인터뷰
"잠수함 충돌 여부보다 복원력 문제 맞는지 검증해야"
[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1000일을 넘긴 세월호 참사의 화두는 여전히 ‘진실’이다. 사고 책임에 대한 의견은 갈려도 그날의 진실을 알고픈 마음은 같다. 단 그 진실에 담겨야 할 객관적 사실과, 진실에 이르기까지의 적합한 방법론이 무엇인지에 관해선 정확히 합의된 바 없다.
작년 12월26일 “진실을 보았다”는 말과 함께 공개된 ‘세월X’는 그래서 의미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실을 밝혀낸 전력의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세월X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는 계기가 됐다.
자로는 화물 과적, 조타 실수, 고박 불량, 복원력 결함 등 기존 견해를 차례로 반박한 뒤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제시했다. 8시간49분 분량의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가설’이다. 세월호 복원력 문제를 핵심으로 꼽은 정부 결론이나 다른 한편에서 제기되는 고의침몰설과 모두 거리를 뒀다.
가설을 세워 데이터를 토대로 객관적 방법으로 검증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접근법은 사실 자로의 것이 아니다. 김관묵 이화여대 화학생명분자과학부 교수(사진)의 것이었다. 세월X의 이론적 토대는 대부분 그의 조사와 연구 결과에서 비롯됐다.
“무리하게 배를 증축한 탓에 무게중심이 올라가고 복원력이 나빠졌다, 게다가 화물을 과적하고 평형수를 뺀 끝에 사고가 났다. 정부 발표나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시뮬레이션이나, 큰 틀에선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럴듯하죠? 한데 여기엔 치명적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나’가 빠져있다는 것이죠.”
지난 11일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복원력 결함으로 대표되는 기존 결론은 구체적 수치가 생략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증축 때문에 무게중심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화물은 얼마나 과적됐는지, 그로 인해 세월호 복원력이 과연 사고가 날 만큼 나빠졌는지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원력은 배가 기울었을 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힘을 뜻한다. 정부와 김 교수의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은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엇갈리는 지점도 복원력이다. 정부는 복원력 불량을 핵심원인으로 든 반면 김 교수는 세월호 복원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근거는 계산이다.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CCTV 영상 확인 등을 거쳐 증축으로 인한 무게중심 이동 정도, 배에 실린 화물 무게와 위치를 고려한 영향력, 경사시험을 통한 복원력 계산을 종합해 “침몰 원인을 복원력 문제로 보긴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정부 조사 결론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고의침몰설 같은 측정불가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는 보다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증거를 댔다. 계산 작업에 들어간 수치와 변수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부 조사도 정량화 및 계산 작업을 안 한 게 아니다. 보고서를 보면 온갖 수식이 나온다. 다만 임의변수(무게중심이 상승해 복원성을 떨어뜨리는 ‘자유표면효과’)를 너무 크게 잡았다. 전문가들이 복잡한 수식에 따라 계산한 결과니 맞겠지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곳곳이 함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정부 측이 복원력을 계산했는데 0.6 이상이 나왔어요. 사고가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수치거든요. 그러니까 자유표면효과를 굉장히 크게 잡아 복원력을 0.38로 떨어뜨립니다. 0.38이라 하더라도 ‘전타’(세월호 타각은 35도)해도 20도 이상 배가 기울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러자 다시 ‘배 안의 화물이 모두 쏠렸다’고 가정을 추가했죠. 극단적 경우의 수를 연쇄적으로 이어서 복원력 사고라는 결론을 낸 겁니다.”
때문에 그는 현재 통용되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최종 결론이 아닌 ‘잠정 결론’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불확실한 계산에 근거해 내놓은 ‘복원력 문제’라는 대전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진실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월X 공개 후 쟁점이 ‘침몰 원인이 잠수함(외력)이냐, 아니냐’에 집중되는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복원력 불량 등 제시된 기존의 다른 가능성들이 워낙 아닌 것 같으니, 그나마 남은 경우의 수 가운데 잠수함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추론을 한 것”이라며 “외력 충돌이 잠수함이냐, 아니냐에만 초점을 맞추면 소모적 토론에 그친다. 그것보다는 제가 제시한 계산 결과에 대한 전문적 검증과 논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른바 잠수함 충돌설은 복원력 계산에 바탕한 ‘소거법’ 방식 추론 외에 레이더 영상이 근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사고 당시 레이더에 잡힌 괴물체가 세월호에 실린 컨테이너가 아니었으며, 이동 방향과 속도로 추정할 때 자체 동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선 “레이더에는 종종 허상이 잡힌다”는 반론이 나왔다.
세월X의 주장은 검증 가능하다는 점에서 음모론과는 결이 다르다. 물론 확실한 검증은 세월호 인양이 전제돼야 한다. 인양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김 교수는 외부 충격 흔적보다 복원력 검증 쪽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복원력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선체 내부 화물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인양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자로 님과 처음부터 의기투합한 건 아니었다”고 귀띔한 김 교수는 “제가 자로 님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세월호 관련 글에 반박 댓글을 달면서 논쟁이 오갔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세월호에 대해 많이 조사했다는 걸 알게 됐다. 만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세월X 공개 후에도 자로 님과 자주 연락하며 의논하고 있다”고 전했다.
“1000일이 넘었어요. 이대로 지나가는 건 퇴보입니다. 과학적으로 가설을 제기하고 검증을 해야죠.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어요. 제가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시민으로서였지만, 이젠 전문가로서 사고의 진실을 명백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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