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재해사망금 지급은 부당
자살을 장려하는 비인도적 발상
보험의 윤리성 원칙에도 맞지않아"
김성태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지난해 이른바 ‘자살재해보험금’을 두고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문이 있었다. 이론적 관점에서 첨예한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보험업계와 감독당국 간 갈등은 해를 넘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평생 보험업법과 기업법제를 연구해온 학자로서 이를 지켜보며 느낀 점을 말하고 싶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민영보험은 사회구성원 간 강한 연대의식의 소산이다. 근대에 들어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경제활동상의 모든 리스크는 개인이 책임지게 되고 ‘공동체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위험단체’를 만들어 상부상조하며 위험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보험제도’다. 이 제도는 엄격한 수리적 기초에 의해 운영되는데, 이른바 대수(大數)의 법칙, 수지상등의 원칙, 급부·반대급부 균등의 원칙에 터잡고 있다.
자살재해보험금을 둘러싼 논란은 법리적 측면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하지만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은 명백히 부당하다. 첫째 인적 손해의 분류상 자살(고의적 생명절단)과 재해(의외의 사고로 인한 신체손상)는 병립할 수 없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자살은 당연 면책으로서 애초부터 보험제도가 보호대상으로 예정하는 위험이 아니다. 상법(제659조)에서도 자살을 보험사의 면책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둘째 결과의 부당성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 기본적인 사망보험금에 더해 거액의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살장려금’까지 주는 셈이 아닌가. 이는 지극히 비인도적 선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회질서에도 명백히 반한다. 그렇지 않아도 자살률이 높은데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용납돼서는 안 된다.
특히 최근 ‘소멸시효가 경과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이번 논란에 의미 있는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최종적인 판단으로서 개인과 기업은 물론 정부당국도 마땅히 따라야 하는 준거다.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감독당국이 사법부의 최종적 판단을 무시해도 된다고 보았다면 이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법과 원칙에 의한 감독이어야 행정제재를 정당화할 수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논점은 보험의 ‘단체성’이다. 보험은 가입자 개인에게는 단순한 채권계약에 불과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보험계약자는 보험회사를 중심으로 ‘위험단체(Gefahrgemeinschaft)’를 형성하므로 보험계약 법리 운용에서도 단체성이 고려돼야 한다. 즉, 전체 보험가입자의 공평한 이익이라는 관점이 우선돼야 한다.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재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재해사망과 동일시해 거액의 보험금으로 보호하는 것은 선의성, 윤리성을 본질로 하는 보험원리에 맞지 않는다.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결과가 되므로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된 재해사망특약에서 보험회사들은 자살을 보험사고에 포함시키지 않아 이에 대한 보험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 뒤집어 보면 보험회사엔 범위 밖의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고, 가입자는 아무런 대가 없이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무신경하게 간과한 깨알글씨(fine print) 약관 한 줄로 인해 생명보험산업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사태의 이면에는 약관내용을 사전에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감독당국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풍랑을 헤쳐 나아감)의 마음가짐으로 감독당국과 보험업계가 지혜를 모아 합리적 해법을 찾길 바란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내버리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조속히 수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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