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 사상 최대치 근접한 독감 환자
독감 환자 1000명당 61.8명
7~18세 환자는 이미 사상 최대
매년 설 명절께 환자 다시 늘어
내년 2월 B형 유행 가능성 커
손만 잘 씻어도 감염질환 예방
기침할 땐 소매·휴지로 가려야
AI 인체 감염 우려도 높아져
닭·오리 등 가금류 접촉 조심
[ 이지현 기자 ] 독감(인플루엔자)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17일 전체 독감 환자는 외래환자 1000명당 61.8명으로 역대 최대인 2013~2014년의 64.3명에 근접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사상 최대 규모를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초·중·고교생 연령대인 7~18세 독감환자는 1000명당 153명으로 이미 역대 최대치를 넘어섰다. 학생을 중심으로 독감 환자가 늘면서 교육부는 전국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조기 방학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일부 학교는 방학을 앞당기기도 했다. 계절독감과 함께 조류인플루엔자(AI)도 활개를 치고 있다. AI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사람 감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감의 증상과 예방법, AI 인체 감염 예방법 등을 알아봤다.
매년 세계에서 50만명 사망하는 질환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걸리는 호흡기 질환이다. 코 목 등 위쪽 호흡기계나 폐 등 아래쪽 호흡기계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갑작스러운 고열, 두통, 근육통, 전신 쇠약감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전염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 임신부, 만성질환자, 소아 등은 독감에 걸리기 쉬운 고위험군이다. 고위험군이 독감에 걸리면 사망에 이를 위험이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독감으로 세계에서 300만~500만명이 중증 질환에 걸리고 50만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독감을 독한 감기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감기와 독감은 다른 질환이다. 독감과 달리 감기는 리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 200여개 이상의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독감 원인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 B, C형 세 가지로 나뉜다.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것은 A형과 B형이다. A형은 H형 항원 16종류와 N형 항원 9종류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보통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항원 종류는 H1, H2, H3와 N1, N2다. 1918년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A/H1N1형이다. 1968~1969년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 독감은 A/H3N2형이다. 올해 국내에서 유행하는 독감 환자는 대부분 A/H3N2형이다. B형은 야마가타, 빅토리아 등으로 바이러스 변이가 많지 않다. A형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I를 일으키는 H항원과 N항원은 대개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바이러스 내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거나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종류의 항원과 유전자 교환 등이 생기면 사람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방학 후 고위험군 감염 우려 높아져
올해는 예년보다 독감이 한 달 정도 일찍 유행하는 바람에 방학에 들어가지 않은 학생을 중심으로 환자가 늘었다. 11~17일 독감 환자가 가장 많은 연령층은 7~18세였다. 0~6세(외래환자 1000명당 59.6명), 19~49세(51.5명) 등이 뒤를 이었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이 같은 환자 분포는 바뀔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방학하면 집단생활을 하던 학생들이 분산되기 때문에 학생 감염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학원, 가정, 시골집 등을 찾는 과정에서 노인, 임신부 등 고위험군 감염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매년 독감 환자는 고향집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는 설 명절에 증가한다. 봄이 돼 개학을 하면 A형 독감 환자는 줄고 B형 독감 환자가 늘어나는 패턴을 보인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내년 2~3월께 B형 독감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독감 유행이 예년보다 빨라 유행 규모가 크고 유행 시기가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겨울과 봄에 유행하는 독감이 다르기 때문에 겨울에 A형 독감을 앓고 난 뒤 봄이 돼 B형 독감에 또 걸리는 환자도 있다. A형과 B형에 동시에 감염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내년 봄까지 이어질 독감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독감 고위험군과 집단 감염 우려가 높은 학생들은 백신을 맞는 것이 좋다.
독감 무료백신 사업 대상에 포함돼 올해 백신 접종률이 82.3%에 이르는 65세 이상 노인은 외래환자 1000명당 의심환자가 9명으로 전체 연령 중 가장 적다. 보건당국은 독감 백신으로 면역이 생겨 감염예방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독감 백신은 접종 2~4주 뒤 효과가 나타난다. 백신이 몸속에 들어가 바이러스와 싸울 항체를 만들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독감 백신의 효과는 6개월 정도다. 매년 새로 맞아야 한다. 박지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번에 유행하는 독감은 현재 병·의원에서 맞는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 종류”라며 “아직 접종하지 않은 노인, 어린아이, 만성질환자 등은 반드시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침예절 준수해야
독감 백신을 맞았다고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신을 접종해도 독감에 걸릴 확률은 30% 정도다. 노약자나 만성질환자는 예방 효과가 더 떨어진다. 따라서 개인 위생수칙을 지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독감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다. 손만 제대로 씻어도 감염질환의 70% 정도를 예방할 수 있다. 독감 바이러스는 딱딱한 표면에서 48시간까지 살 수 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오염되기 쉬운 물체를 만진 뒤에는 반드시 세정제 등으로 손을 씻어야 한다.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손에 있던 바이러스가 입이나 코 등의 호흡기 점막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보건원 실험 결과, 성인은 시간당 3.6회 얼굴을 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4개월 미만 영아는 81회, 24개월 이후의 유아는 48회 입에 손을 댔다. 콘택트렌즈를 빼고 끼는 행동도 눈 점막에 손이 닿아 감염 위험을 높인다. 콘택트렌즈를 빼기 전과 착용하기 전, 코를 풀거나 기침 재채기를 한 뒤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음식을 먹기 전과 외출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기침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휴지로 입과 코를 가려야 한다. 휴지가 없다면 소매로 가리고 하는 것이 좋다. 독감 바이러스는 건조한 점막에 잘 들러붙는 특징이 있다. 물을 수시로 마셔 점막을 촉촉하게 유지하면 독감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올해는 AI 확산으로 AI 인체 감염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17명이 AI에 감염돼 10명이 사망했다. AI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종간 벽을 넘은 적은 있지만 사람 간 감염으로 퍼진 사례는 없다. 닭 오리 등 가금류와 접촉하는 일이 없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독감과 AI 예방을 위해 위생수칙을 지키고 축산 농가 등의 방문은 자제해야 한다. 닭 오리 등은 75도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해 섭취하고 계란도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독감 의심 증상이 있을 땐 병원을 찾아 진료받아야 한다.
도움말=박지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질병관리본부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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