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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배우고 눈치보고…취향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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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탄생

톰 밴더빌트 지음 / 박준형 옮김 / 토네이도 / 352쪽│1만5000원



[ 김희경 기자 ]
여러 사람에게 같은 곡을 들려줬다. 작곡자는 각각 다르게 알려줬다. 어떤 이에겐 바흐, 다른 이에겐 가상의 북스테후드라고 했다. 작곡자 정보를 접한 순간 음악 선호도가 달라졌다. 바흐라고 들은 사람들의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친숙한 유명 음악가에게 ‘무조건 반사’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노출 정도도 음악 취향에 영향을 미친다. 많이 들어본 노래일수록 좋아한다. 생소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은 학습하는 것이며 학습해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취향의 탄생》은 불분명하고 모호한 ‘취향’의 특징을 살펴보고, 심리·문화적 분석을 제시한다. 미국 월간지 ‘와이어드’의 객원기자이자 심리학 책 《트래픽》을 쓴 저자 톰 밴더빌트는 취향에 대한 오해와 편견, 진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많은 사람이 음식 취향은 철저히 개인의 기호에 따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태어날 때부터 배워온 것이다. 학습 효과는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당근 주스를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태아 주변의 양수를 당근 특유의 냄새와 맛이 감싼다. 이는 아기에게 특별한 식사 경험을 만들어준다. 자궁 밖으로 나오면 아기는 자연스럽게 당근 주스를 좋아하게 된다. 저자는 “타고난 취향은 별로 없다”며 “자연적이라고 알려진 취향은 문화적인 내용이 생물학의 옷을 둘러 입은 결과일 때가 많다”고 설명한다.

취향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비교의 결과다. 오페라를 처음 본 사람은 공연이 끝난 뒤 고개를 여기저기 돌린다. 이때 그가 기립박수를 보내는지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달렸다. 다른 이들이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낸다면 그 역시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검색할 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보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평가 수가 늘어날수록 평가 내용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바뀐다. 평가가 많이 쌓이면 사람들은 물건 자체에 대해선 적게 얘기한다. 대신 이전에 쌓인 평가를 평가한다. ‘좋아요’라고 말한 평가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 쌓인 수많은 평가를 본 전후 그 제품을 바라보는 취향은 바뀔 수 있다.

취향의 가변성은 예술 작품에도 적용된다. 영국 화가 에드윈 롱스덴 롱의 ‘바빌로니아의 결혼 시장’은 1882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인 6000파운드를 기록했다. 이 그림은 지참금 없는 신부들이 경매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롱은 인기 작가로 발돋움했다. 당시 파리의 드루오에서 열린 또 다른 경매도 살펴보자. 경매엔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롱과 달리 이들의 작품은 냉소와 비판의 대상이 됐다.

130여년이 흐른 현재,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롱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반면 인상파 작가들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저자는 “그림은 그대로지만 취향이 바뀌었다”며 “감상 방식, 메시지를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바뀐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또한 가변적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엔 정반대가 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은 참신함을 갈구하는 동시에 친근함을 원한다”며 “이 중간에서 옛것을 기억하게 하는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포함해 누군가의 취향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은 모호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모든 취향은 비슷한 심리·문화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드러내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는가. 하지만 취향은 이처럼 여러 요인에 의해 쉽게 변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어떻게’ 좋아하고 즐기는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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