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으로 바뀌는 전세계 경기부양책
GDP의 0.5% 추가 재정투자 여력 있어
한국은 인프라에 대한 투자확대 절실
이상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
지난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당초 2.7%에서 2.4%로 하향조정했다. 이마저도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은 고려하지 않은 전망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 정부는 민간 경제단체장들에게 “투자와 고용을 차질없이 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투자, 고용, 소비 모두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간다면 1%대 성장도 어려울 수 있다. 당장 정부가 나서서 ‘확장적 재정정책’이란 기조 아래 내년 상반기에 집행할 추가경정예산부터 논의했으면 한다.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을 보라. 11월 말 영국 정부는 230억파운드(약 33조원)에 달하는 ‘국가생산성투자펀드’를 조성해 향후 5년간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브렉시트와 인플레 및 파운드화 가치 하락으로 영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당초 2.2%에서 1.4%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투자와 소비를 확대하고, 저성장과 빈약한 생산성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신규 및 서민주택 건설, 도로철도교통 네트워크를 비롯한 인프라와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재 84.2%인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에 90%를 넘길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아예 2020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했다. 하지만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에도 40.4% 수준이다. 영국보다 훨씬 재정 건전성이 좋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도 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면서, 각 국의 경기 부양책 흐름은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우리에게 ‘확장적’ 재정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OECD는 11월 말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기존의 3.0%에서 2.6%로 하향조정했다. 한국을 포함한 OECD 국가의 상당수는 글로벌 저금리로 재정여력이 확장됐기 때문에 GDP 대비 0.5% 수준의 추가적인 재정 투자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에 한국의 GDP 규모가 약 1500조원이었기 때문에 8조원 정도의 추가적인 재정 투자는 문제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재정 건전성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큰 규모도 가능하다. OECD는 고품질의 인프라, 보건, 교육부문과 더불어 노후 인프라의 보수보강 및 유지관리에 대한 재정 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OECD 권고를 떠나서, 노후 인프라에 대한 재정 투자 확대는 적극 추진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인프라 투자도 압축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인프라의 노후화도 특정 시기에 집중될 것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교량, 터널, 항만, 댐, 건축물, 하천, 상하수도, 옹벽, 절토사면 등 주요 인프라 7만1109개 중 30년을 초과한 시설은 2862개라고 한다. 학교시설 2만131동 중 약 78%인 1만5653동은 법으로 정한 내진 성능 기준에 못 미친다. 서울시 전체 도로 시설물의 52.8%는 20년을 초과했으며, 30년을 초과한 시설물도 25.2%에 달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국민 안전에 큰 위험이 되고, 보수비용 급증, 시설물의 효율성 저하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의 생산성 저하를 초래한다. 노후 인프라 실태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유지보수를 위한 투자는 빠를수록 좋다.
불확실성은 민간투자의 적(敵)이다.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는 민간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럴 때는 재정이 버팀목 역할을 해줘야 한다. 특히 조선해운산업 등의 구조조정 여파로 지역경제가 어려운 곳일수록 적극적인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후 인프라 투자확대를 비롯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답이다.
이상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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