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속 이익 챙기는 주변 4강 외교전
경기장 밖의 한국은 협력할 곳 있는가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
도널드 트럼프와 차이잉원의 통화는 전격적이다. 미국과 대만의 정상이 전화한 건 단교 37년 만의 일이다. 1995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래 가장 굵직한 대만 이슈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깼다”는 얘기가 나왔다. 백악관의 양안 정책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도 있다.
“무심코 혹은 마음먹고?” 가장 알고 싶은 건 트럼프의 속내다. 단순히 당선 축하 전화를 받았다면 ‘무심코’에 가깝다. 그게 아니라면 마음먹은 것이다. 답을 확인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개월의 물밑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관심은 다른 영역으로 이동한다. “무슨 마음을 먹었을까?” 미국의 깊은 속내는 역사에 그 흔적이 있다. 1972년 ‘상하이 코뮈니케’. 44년 전의 이 공동성명에서 미국과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 미·중 수교(1979)의 시금석이다.
1980년대 나는 상하이 코뮈니케를 끼고 살다시피했다. 미·중 관계 정상화의 배경은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트럼프와 차이의 통화 후 상하이 코뮈니케를 다시 펼쳐본다. 전에 주목하지 못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한다.” ‘하나의 중국’을 현실로 인정(acknowledge)했을 뿐이다. 코뮈니케 그 어디에도 지지(endorse), 동의(agree) 혹은 수용(accept)한다는 표현은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의 본질이다.
미국의 양안 정책을 간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건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초기의 ‘미·중 8·17 공보(1982)’. 미국은 대만에 무기판매 정책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1980년대 미·중 관계를 안정시킨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8·17 공보’ 서명을 1개월 앞두고 장징궈 당시 대만 총통에게 ‘6개항의 보장’을 약속한다.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종료 시한을 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대만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는 ‘대만관계법’도 수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상하이 코뮈니케에서 ‘인정’할 뿐 지지, 동의, 수용 등의 표현을 하지 않은 것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미국의 양안 정책은 1972년 닉슨의 방중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만 받아들이지는 않는 원칙은 공화당 정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8년 중국 방문 때 대만 주권에 관한 3불(不) 정책을 발표했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책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미국이 대만의 무엇에 반대하고 중국의 무엇에 지지하는지가 모호하다.
지난 9월 초 중국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을 앞둔 때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상하이 코뮈니케를 언급하며 양국 관계 발전을 강조했다. 미국은 여전히 다른 버전의 상하이 코뮈니케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로선 양국의 시시비비를 가리려 할 일이 아니다. 줄을 설 일은 더욱 아니다.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전이 치열하다. 잘 지내 온 미국과 일본은 더 잘 지내려 한다. 미·중, 중·일은 갈등 속 이익 챙기기 모양새다. 미·러, 러·일은 신밀월 가능성이 엿보인다. 우리는 씁쓸하다. 눈을 부릅뜨고 뛰어들어도 모자랄 판에 몸이 경기장 밖에 있다. 깊은 소통과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곳이 있는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또 다른 어디든 말이다. 갈 길은 먼데 해 지는 건 아닌지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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