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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난설헌,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의 불행…허난설헌의 '27년 인생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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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 부산 영도도서관장 >


사람의 불행은 어느 선까지 이를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비극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있어야 그 사람을 정말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최문희의 소설 《난설헌》은 ‘너무나 처절한 한 여자의 불행한 일생’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조선 중기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시를 중심으로 그의 짧은 27년을 소설 형식으로 엮어나간다. 책을 읽고 있으면 허난설헌의 모습이 마치 선명한 풍경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허난설헌을 이해하는 데는 그의 친동생이자 누나의 작품을 유언대로 불태우지 않고 《난설헌집》으로 엮어 후세에 남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허균은 허난설헌의 시문학을 중국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불에 태워질 뻔한 그의 작품을 오늘날까지 남겨줬기 때문이다.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딸에게 초희란 이름과 난설헌이란 호를 지어줬고, 딸의 뛰어난 문학 재능을 높이 사 어린 시절부터 당대 시인으로 꼽힌 이달에게 개인 수업을 받게 했다. 난설헌의 천재성은 8세 때 쓴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해 아득하고 아득해/북극성에 젖어드는데/봉새 날개 하늘 치니/그 바람 힘으로 물이 높이 치솟아/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비의 기운이 어둑하다/어영차, 위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이렇게 보면 난설헌은 불행할 것이 하나 없다. 그는 ‘강물에 비단옷을 빨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의 불행은 15세에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번번이 과거에 낙방한 김성립은 난설헌에 대한 열등감에 빠졌고, 기방을 돌아다니며 극심한 바람을 피웠다. 시어머니 송씨의 상상하기 힘든 구박을 받은 난설헌은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18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고, 19세 때 딸이 죽고, 20세 때 아들도 죽고, 배 속의 아이도 유산한다. 21세에 그토록 사랑한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고 5년 뒤 금강산에서 오빠마저 객사한다. 난설헌은 오빠를 찾아 금강산을 수없이 헤매다녔으며 결국 27세에 ‘몽유광상산시서’를 남기고 사망한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碧海浸瑤海)/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靑彎倚彩彎)/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芙蓉三九朶)/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紅隋月霜寒)’

난설헌은 생전에 입버릇처럼 세 가지 한(恨)을 말하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멍청한 남편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었다. 이는 ‘다시는 조선 땅에 태어나지 않으리,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으리, 나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라’는 유언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문체는 간결하고 정제미가 넘친다. 마치 영화를 보듯 구성이 매끄럽고 시각미가 뛰어나다. 소설이지만 시적 언어사용이 많다. 자연스럽게 천재시인 난설헌을 연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450년 전 조선 땅에 태어나 끝도 없는 불행의 늪에서도 아름다운 시를 남기며 몸부림친 여인 허난설헌을 만나보길 바란다. (최문희 지음, 다산책방, 380쪽, 1만3000원)

이동희 < 부산 영도도서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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