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비네의 공쿠르상 수상작 'HHhH' 출간
[ 양병훈 기자 ] 1942년 5월27일 나치 독일에 점령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 아돌프 히틀러의 유력 후계자며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지금의 체코)의 총독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괴한의 공격을 받고 중태에 빠진다. 하이드리히는 병원으로 이송돼 잠시 정신을 차리지만 폭발로 인한 감염 때문에 1주일 만에 죽는다. 점령군 사령부는 암살범을 찾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온 나라를 이잡듯이 뒤진다. 어느 날 사령부에 ‘하이드리히 암살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사람이 찾아온다.
당시 프라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추적한 로랑 비네의 장편소설 《HHhH》(황금가지)가 번역, 출간됐다. 프랑스 태생인 비네는 이 작품으로 2013년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공쿠르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지고 관련자를 인터뷰하는 등 꼼꼼하고 폭넓게 취재했다. 책의 3분의 2는 사료를 바탕으로 암살사건을 재구성한 부분이어서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당시 있었을 법한 일’을 상상한 소설이 나온다. 저자가 이 작품을 ‘토대 소설(infra novel)’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점령군 사령부는 암살범 색출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한 마을 주민 전체를 몰살하기도 한다. 하이드리히를 죽인 범인은 체코 망명정부가 투입한 전투요원 2명이다. 이들은 자신이 한 일로 무고한 사람 수천명이 죽었다며 자괴감에 빠진다. “하이드리히가 죽어서 나아진 일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자책한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두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암살 작전이 정당했다고 강조한다. 체코 전투요원의 순수한 헌신은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이 사건으로 나치의 야만성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많은 나라가 반(反)독일 전선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가디언’은 이 작품에 대해 “밀란 쿤데라의 영향을 받은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인다”며 “기적 같은 용기의 가치를 그리고 있으며 힘이 넘치는 엔딩도 압권”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완전히 픽션을 재창조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실화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되 끝없이 코멘트를 붙였다”며 “독자를 역사적 사건으로 더욱 가까이 데려가는 작품”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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