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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살이냐, 경영권 넘겨라"…기업인 면박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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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 글로벌 기업 총수 하루종일 죄인 취급
박영선 "기억력 안 좋다…아는 게 뭐냐"
안민석 "50살도 안됐는데 동문서답하냐"
황영철, 책상 두드리며 "이보세요" 호통

"며느리 국적 어디냐"…"머리 나쁜 거냐"…황당 질문에 인신공격까지
국회의원들, 기업인에 호통칠 자격 있나
하태경 "5공 청문회 나왔던 분 자제 또 나와"
박범계 "서울구치소 멀리 있는 곳 아니다"
윤소하 "예, 아니오만 대답하면 되잖아" 호통



[ 유승호 / 임현우 기자 ]
“기억력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아는 게 뭐가 있습니까. 삼성전자 부회장이 맞습니까.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물러나세요.”(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몇 살입니까. 50세도 안 됐는데 남이 질문하면 동문서답하는 게 버릇입니까.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을 오늘 당장 해고한다고 약속하세요.”(안민석 민주당 의원)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를 상대로 본질에서 벗어난 호통과 막말을 쏟아냈다.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다.

‘5공비리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기업 총수들이 출석한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대기업 총수에게서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오로지 기업을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몰아붙였다. 청문회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전모를 파헤친다는 본래 목적에서 멀어져갔다.

안민석 의원은 총수들 앞에서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적힌 종이 피켓을 꺼내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사용하는 피켓이었다. 안 의원은 피켓 내용을 읽으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국정농단의) 공범이라는 점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이 대답하지 못하자 “공범 맞습니까”라고 다그쳤다.

박영선 의원은 한 술 더 떴다. 박 의원은 “국민 질문이다. 문자가 들어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모르는 게 많고 기억력이 안 좋은 것 같다. 더 기억력이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지 않느냐”고 몰아세웠다. 이 부회장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답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988년 5공화국 청문회에 나왔던 분들의 자제 6명이 또 청문회에 나왔는데 정경유착이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5공 청문회에 (나왔던) 정주영 아들 정몽구, 이건희 아들 이재용, 구자경 아들 구본무, 최종현 아들 최태원, 신격호 아들 신동빈, 조중훈 아들 조양호”라고 총수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고 다짐하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위 위원장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오전 질의가 끝날 무렵 총수들에게 “정경유착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약속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총수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답을 하지 않았다.

총수들의 답변을 끊고 면박을 주는 구태도 되풀이됐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 삼성물산 자사주 5.76%를 KCC에 왜 팔았느냐”고 질문했다. 손 의원은 이 부회장의 답변이 길어지자 “시간이 없다”며 “질문에 딱 대답해달라”고 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씨 존재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기억하지 못하자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자격이 안 된다”고 몰아세웠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과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누가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이 부회장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책상을 두들기며 “이보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 보상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이 부회장이 대답하려 하자 “예, 아니오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윤 의원은 이어 “(삼성전자가 보상금으로) 500만원을 제안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 부회장이 “그건 몰랐다”고 답하자 “하기야 돈으로 보이겠습니까마는”이라며 비꼬는 듯한 말을 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서울구치소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복역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박 의원은 또 “유독 박근혜 대통령의 사랑을 받은 느낌”이라고 비꼬았다. 최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이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 총수 중 촛불집회에 나가본 적 있는 분 손들어보라”고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손을 들자 안 의원은 “당신은 재벌 아니잖아요”라고 말해 실소를 자아냈다. 안 의원은 또 이 부회장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반복하자 “머리가 안 좋은 건지”라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건과 무관한 질문도 쏟아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 부회장이 과거 대주주였던 인터넷 벤처기업 e삼성의 경영 실패를 언급하며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박 의원은 “갤럭시노트7이 실패했고 이재용 폰은 안 팔리니까 슬쩍 없어졌다”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 부회장은 “이재용 폰이란 건 없다”고 답했다.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롯데는 한국 기업이냐”고 질문했다. 롯데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가 일본에 있으니 일본 기업 아니냐는 논리였지만 국정농단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얘기였다.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신 회장 장남이 결혼했는데 며느리 국적이 어디냐” “신 회장 부인도 일본 사람 아니냐”며 가족사까지 언급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총수들에게 ‘지역구 민원’을 제기했다. 전남 여수갑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여수에 있는 GS문화센터는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반면 롯데케미칼과 제일모직은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않아 좋은 평판을 못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한화가 8억3000만원짜리 네덜란드산 말 두 필을 구입해 최순실 씨 딸인 정유라 씨에게 상납했다”며 “한화가 삼성과 방산·화학기업 빅딜을 하는 과정에서 비선 실세 망나니 딸에게 말까지 사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화 측은 “장 의원이 언급한 말은 김 회장 3남인 김동선 선수가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사용한 것인데 이듬해 장꼬임으로 폐사했다”며 “정씨에게 줬다는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유승호/임현우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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