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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출렁이는 설산 파노라마…오라! 알래스카 정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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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영화로 떠나는 여행

'인투 더 와일드' 무대서 자연의 맨 얼굴을 어루만지다

스워드 하이웨이 따라 드라이브
'러시안 강'선 연어낚시 즐겨
경비행기로 만년 설산 감상도




시카고 세드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 쇼를 보는 것과 태평양 한가운데서 돌고래 떼를 만나는 일은 무엇이 다른가? 야생 동물을 보고 사진 찍는다는 것은 얼핏 낭만적이고 가슴 뛰는 일처럼 들리지만 내게는 비포장도로, 뱃멀미, 인내심, 허탕, 운 같은 것과 동일하게 들린다. 사실 알래스카에 간 것은 순전히 야생 곰이 보고 싶어서였다. 나보다 거대하고, 힘이 세고, 포악하고, 순진한 생명체와의 조우. 영화 ‘레버넌트’에서 팔을 공중에 한 번 휙 휘둘러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등짝 살을 가차없이 발라내던 무자비한 짐승. 수많은 생물이 살아 숨쉬는 야생의 자연을 만나러,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스워드 하이웨이를 따라 키나이 반도의 연어낚시터로 유명한 러시안 강(Russian River)으로 향했다.

스워드 하이웨이는 세계 10대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가는 길에 눈 덮인 설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하얀 벨루가 고래를 관찰할 수 있다. 비록 벨루가 고래는 못 보았지만 눈 덮인 설산의 풍광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몇 시간을 차로 달리고, 다시 한 시간을 걸어야 러시안 강에 도달한다. 멀고 험난한 일정이었지만 아쉽게도 곰은 보지 못했다. 대신 여행 갔을 때가 6월 말 연어 산란기라 험한 물살을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연어 떼를 볼 수 있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전 연어는 가만히 강 아래서 몸을 추스르다 갑자기 펄쩍 하고 강물 위로 세차게 뛰어오른다. 작은 물고기가 죽을힘을 다해 세상의 이치를 역류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다음 날 다시 곰을 만나러 이번에는 앵커리지 북쪽 드날리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여긴 북미의 최고봉 매킨리 산이 있는 곳이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고상돈 대원이 이곳에서 사망했다. 당연히 걸어서 매킨리봉 근처에 가겠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대신 큰맘 먹고 경비행기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탈키트나에서 경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한 시간 안에 매킨리봉뿐 아니라 수많은 드날리의 준봉과 빙하를 눈앞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비행기는 거대한 빙하 위에 우리를 내려줬다. 많은 산악인이 목숨을 걸고 등산하는 이 고산준봉에 그토록 쉽게 다가가다니. 관광객에 불과한 내가 산악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드날리 국립공원에서 예약한 버스에 올랐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광활한 드날리를 돌아다니는 투어다. 알고 보니 드날리 국립공원은 요세미티와 달리 일반인이 마음대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버스만을 타고 다녀야 한다. 철저히 안전 수칙을 지키는 가이드 투어만 하도록 규제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 ‘인투 더 와일드’를 본지라 그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투 더 와일드’는 20대 청년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는 전 재산인 2만4000달러를 모두 국제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은 채 맨몸으로 미국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는 자연과 함께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알래스카를 생각한다. 드날리 국립공원에서 비어 있는 버스를 발견하고 지도 한 장 없이 총 한 자루로 사냥을 하고 야생 식물들을 따 먹으며 113일을 지냈다. 하지만 돼지감자로 착각해 독초를 먹고 사경을 헤매다 결국 1992년 버스 안에서 굶어 죽고 만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그에게 알래스카는 꿈속의 이상향이었겠지만, 야생은 그의 무모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고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답했다.

이 과경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만큼 야생을 사랑했던 사람. 역시 야생의 품에서 죽어간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다. 일본인 출신인 그는 알래스카에 매혹돼 평생 이곳에서 야생 동물 사진을 찍으며 살았다. 캄차카 반도에서 불곰 취재를 위해 텐트에서 잠을 자다 곰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책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속의 사진들이 바로 드날리에서 2시간 거리인 페어뱅크스 북극 박물관에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알래스카대 페어뱅크스 캠퍼스의 북극 박물관은 박물관 자체가 이글루 모양으로 생겼다.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특이하기 이를 데 없다. 호시노 미치오 사진 외에도 다양한 알래스카의 조각과 회화를 감상한 뒤 박물관 앞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야생 곰을 모험하듯 만나 보겠다는 나의 판타지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알래스카의 진짜 주인은 연어, 순록, 바다사자, 수달, 곰 그리고 모기였다. 사진으로 보면 서정적이기 이를 데 없는 페어뱅크스의 자작나무 숲도 실상 두 발자국도 걷기 어려울 만큼 모기들의 천국이었다.

결국 곰 사진은 여행 말미 알래스카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간신히 찍을 수 있었다. 사진 속 무심하게 미소 짓는 곰은 이렇게 타이르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지구가 너희 인간들의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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