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하루 120만 배럴 감산
사우디·이란 양보'극적 타결'
비 OPEC 산유국도 60만배럴↓
이란만 일시적 증산 허용
유가 고공행진은 어려울 듯
"가격 뛰면 미국 셰일오일 생산 늘어
공급과잉 반복될 가능성 커"
[ 뉴욕=이심기 기자 ] 극적인 타협이었다. 지루한 줄다리기와 치킨게임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비관론이 우세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협의는 1~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이라크가 한발씩 물러서면서 급진전됐다.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가 유가 반등세를 타고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OPEC, 감산량 배분에 극적 성공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정기회의에서 14개 회원국 중 내전 상태인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를 제외한 12개국이 새로운 생산량(쿼터)을 할당받았다. 세계 최대 석유카르텔이 생산량의 3.5%인 하루 120만배럴(글로벌 생산량의 1% 이상)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사우디가 하루 48만배럴을 줄여 1005만8000배럴을 생산하기로 했고, 이라크도 사우디의 절반가량인 21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 아랍에미리트(UAE·13만9000배럴), 쿠웨이트(13만1000배럴)와 경제가 붕괴 직전에 내몰린 베네수엘라까지 하루 산유량을 9만5000배럴 줄이기로 했다.
이날 합의는 중동의 패권을 놓고 대립하던 사우디와 이란이 막판 타협으로 돌아섰고, 다른 산유국들도 자국의 심각한 경제난이 해소돼야 한다는 점이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이뤄졌다. 이란만 유일하게 9만배럴 증산이 허용됐다. 대신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이전 수준인 379만배럴까지 늘린 뒤에는 동결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30만배럴 감산에 동의한 점도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비OPEC 회원국은 9일 회의를 열고 60만배럴 감산을 확정짓는다. 사우디는 러시아의 감산을 전제로, 러시아는 OPEC이 이날 결정한 하루 생산량 3250만배럴 준수를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유가 55~70달러 전망
전문가들은 이번 감산 합의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55달러에서 최고 70달러까지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OPEC의 전망치는 55~60달러다.
하지만 유가 고공행진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 셰일오일 업계가 생산량을 늘리면 반등세가 꺾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가가 50달러에 도달하면 셰일오일 원가를 넘어서 다시 생산을 늘려야 하는 인센티브가 생긴다”며 “이로 인해 OPEC의 가격관리 능력이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산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중동과 아프리카 산유국, 러시아는 이전에 합의한 감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플러스 될까
WSJ는 과거 유가 상승이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면서 경기침체의 원인이 됐지만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투자 확대가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성장을 더욱 자극하면서 실업률 추가 하락과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 유가는 그동안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에 시달리며 정부 지출을 졸라맸던 원자재 신흥국들의 경제가 호전되는 계기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러시아와 브라질, 중동 국가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러시아 루블화, 멕시코 페소화, 캐나다 달러화 가치 상승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급격히 오를 경우 글로벌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럴당 80달러를 넘어 100달러에 근접하면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다는 관측이다. WSJ는 “유가가 적정가격 범위 내에서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며 “배럴당 60달러 정도(스위트 스폿)면 정유사들이 적정 마진을 누리면서도 소비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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