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 회계감사
신뢰 붕괴되면 큰 경제 손실 초래
지정감사제 확대 등 규제 개선해야"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 / 전 금융감독원장 >
대우조선의 대규모 회계분식과 관련, 회사 전·현직 임원들과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거나 구속됐다. 대우조선의 회계분식은 엄밀히 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우조선을 계열사로 둔 대우그룹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전후로 대규모 회계분식을 이용해 은행과 자본시장에서 수십조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 결과 상당수 은행이 부실대출로 구조조정을 당했고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구입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봤다.
망가진 금융시스템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 공적자금이 국민 세금으로 투입됐다. 지금의 대우조선은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출자전환한 회사다. 국책은행이 대주주가 돼 관리하고 있음에도 분식회계가 또다시 발생했다.
분식회계가 이처럼 경제 전반에 엄청난 폐해를 미치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데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현행 자유수임감사제에서는 회계감사를 의뢰하는 기업이 회계법인에 대해 우월적인 ‘갑을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회계감사 보수수준도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반도체, LCD, 휴대폰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며 국내외 수많은 공장을 갖고 있는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의 감사보수는 2014년 기준 37억원이다. 휴대폰 단일 품목으로 자체 생산공장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미국 애플사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의 회계감사 보수도 미국 GM의 20분의 1 수준이고 국민은행은 미국 BoA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우조선을 보면, 지난해부터 제기된 조선업계 부실문제로 감사 투입 필요시간이 2배 이상 늘었음에도 감사보수는 직전연도와 동일한 5억4600만원이었다. 투입시간에 비례한 감사보수를 받지 못해 제대로 된 감사를 할 수 없었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보수체계는 회계법인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문제점을 들여다보길 원하지 않는 기업 입장을 다분히 반영한 구조다. 회계법인 선정도 회사 오너나 최고경영자와의 친소관계가 영향을 미쳐 회계법인 처지에서 기업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분식회계에 대한 처벌도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가볍다. 미국은 엔론 사태를 계기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회계법인의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엔론의 최고경영자는 24년형을 선고받았고 회계법인인 아서앤더슨은 해체됐다. 또 미국은 집단소송제 발달로 회계 사기 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주기도 해 분식회계를 시도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회계 인프라를 경시하는 요인이다. 한국은 은행 위주로 금융시장이 발달해 회계장부보다 담보에 의존해 대출이 이뤄지다 보니 회계 의존도가 낮다. 과거 교량이나 건물 붕괴와 같은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저가 입찰에 따른 부실시공이 지적되듯이 지금과 같은 회계감사 시스템은 대형 금융사고를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부담 완화와 공정경쟁 측면에서 상장 예정 기업의 지정감사제를 완화하고 감사보수 최저한도 설정 등을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해 왔다. 그러나 공공재 성격을 띠는 회계감사를 자유시장 경쟁에만 맡겨두면 자칫 경제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자본인 회계에 대한 신뢰붕괴로 이어져 더 큰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엔론사태 이후 회계감독을 강화한 미국처럼 회계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상장기업에 대한 지정감사제를 확대하고 감사보수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회계사기를 막기 위한 독립적인 민간의 회계감독위원회(PACOB)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 / 전 금융감독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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