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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대통령이 던진 말에 갈팡질팡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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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퇴진시기 국회 결정’ 제안으로 정치권 균열

새누리당은 ‘4월 퇴진-6월 대선’ 당론으로 결정했지만
야당은 대통령 탄핵 시점 놓고 대립…탄핵 물건너갈수도
박 대통령 고도의 전략적 노림수?…정치권이 말려들었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29일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한 뒤 정치권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간, 친박과 야당간, 탄핵 한목소리를 냈던 비박과 야당간,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간 탄핵과 대통령 퇴진 문제를 놓고 서로 이견을 보이며 어지럽게 대립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고도의 계산된 전략 아래 자신의 진퇴 문제 결정을 국회로 넘겼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1일 의원총회를 열어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퇴진 및 6월 대선 일정을 만장일치로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런 일정은 지난주말 국가 원로들의 의견을 듣고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정적 정권 이양을 위해, 최소한의 대선 준비기간 확보를 위해, (내년 4월말이) 탄핵 심판의 종료와 비슷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가장 합리적 일정이라는 데 당 소속 의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박수를 통해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방향타 잃고 외통수에 몰린 야당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에 대해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친박계는 이른바 ‘질서있는 퇴진’을 위해 여야가 즉각 퇴진시기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퇴진 시기를 4월로 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가 퇴진시기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면 9일 탄핵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게 비박계의 입장이다.

야당 사정은 더욱 꼬여졌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사퇴는 늦어도 1월말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여의도 한 호텔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임기단축을 위한 협상 가능성은 전혀 없나’라는 질문에 “탄핵과 동시에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것”이라며 “이같은 입장을 김 전 대표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개헌을 통해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하기 위한 협상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반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입장은 탄핵이나 대화와 협상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만약 오늘 탄핵소추안을 제출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12월 9일을 향해 탄핵열차는 달려가야 한다”고 했다.

추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일 탄핵을 강행할 것을 주장했고, 박 위원장은 가결에 자신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야당끼리 하루종일 입씨름을 벌였다. 세 사람은 이날 국회에서 만나 2일 탄핵안을 처리하는 문제를 협의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 추 대표와 심 대표는 야3당이 전날 합의한대로 이날 탄핵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박 위원장은 그런 약속은 없었다면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합류하지 않을 경우 탄핵안을 발의할 수 없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때문에 민주당이 추진했던 ‘2일 탄핵안 국회 본회의 처리’는 무산됐다. 9일 탄핵안 처리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에 찬성했던 비박계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통령의 ‘퇴진시기 국회 결정’ 제안 이후 ‘신중’ 쪽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탄핵 가결에 필요한 200명 찬성 확보가 어렵다. 야당 의원들 중에서도 대통령 제안에 대해 여야가 마주앉아 협상해야 한다는 기류가 적지 않다. 야당이 외통수로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박 위원장은 회동이 끝나고 나서 기자들과 만나 “내일 본회의가 열리면 야3당 공동으로 탄핵안을 발의해 9일 표결하면 된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과 정의당 공히 오늘 발의해야 한다고 해 쳇바퀴가 돌았다”고 전했다.

추 대표와 김 전 대표의 단독회동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대선주자인 김부겸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당 대표의 경솔함으로 탄핵연대에 난기류가 생겼다”고 정면 비판했다. 또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건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 셋째도 신뢰”라며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르면 어떻게 함께 어깨를 걸 수 있겠느냐”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당과 상의도 없이 대표의 독단으로 문제가 생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엄혹한 국면에서의 독선과 오판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국민의당이 반발하고, 새누리당 비박 의원들은 탄핵 철회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2일 탄핵안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는데도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무모함마저 보이고 있다. 이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느냐”고 지적했다.

한달 넘게 오락가락…정치 불확실성만 키워

사태가 이렇데 된 데에는 정치권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야당은 강수만 두다가 대통령 조기퇴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효적인 방법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당초 거국내각을 요구하다가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자 태도를 바꿨다. 거국내각을 거부함에 따라 대통령을 뒤로 물러나게 할 타이밍을 놓쳤다. 촛불시위가 격화되면서 야당은 요구수준을 더 높여갔다.

대통령 2선 후퇴를 외치다가 질서있는 퇴진 쪽으로 갔다. 이번에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질서있는 퇴진을 수용하니 야당은 탄핵과 퇴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 대통령과 여당이 한발 다가가면 야당은 한발 도망가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러다가 탄핵 시점을 놓고 야당이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5일 박 대통령의 1차 사과담화 이후 정치권은 이렇게 한달 넘게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며 정국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던진 ‘퇴진시기 국회 결정’전략은 이렇게 정치권을 갈가리 찢겨놓은 결과를 낳았다. 박 대통령의 노림수에 정치권이 말려든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의 수준은 낙제점을 면하지 못할 것 같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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