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가운데 탄핵안이 가결돼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경우 직무 범위가 어디까지일 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행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직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지난 정부의 사례를 기초로 총리의 직무범위를 판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정사에서 총리 등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사례는 네차례다. 첫 번째는 1960년 4월27일 아승만 전 대통령이 사임하고 대행 1순위인 허정 외무부 장관이 권한을 대행했다.
이후에는 1962년 3월24일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사임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당시 장군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위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세 번째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최규하 국무총리의 사례가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고 고 건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전례가 있다.
○ 헌법학자가 본 대통령 권한 대행 직무범위는?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직무 범위는 크게 4가지이다.
다수설은 국무총리가 국정 마비를 막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한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임명직 공무원인 국무총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 견해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 대행은 국무위원이나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FTA) 처럼 중요한 협정이나 조약도 체결할 수도 없다.
두 번째는 헌법상 대통령 권한 대행자의 업무에 제약이 없는 만큼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다.
아울러 대통령 궐위 시에는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사고로 잠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상 유지만을 해야 한다는 견해,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있다.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한 고건 전 총리는 철저하게 낮은 자세로 제한적인 업무만을 수행하며 다수설을 따랐다.
경호와 의전에서도 청와대팀의 합류를 최소화했고, 외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제외하고는 청와대를 거의 찾지 않았다.
또한 청와대 비서실이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도록 하면서 공적인 국가활동에 대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보좌를 받았고, 총리실 업무에 대해서만 국무조정실의 보고를 받았다.
고 전 총리는 당시 특별사면에 앞서 국회의 의견을 듣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이 또한 대통령의 고유권한 가운데 하나인 사면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지 새로운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없었다.
○'황교안 권한 淪?#39;은 어디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면 황교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황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도 고 전 총리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념적 성향이 박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다 황 총리가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넘어선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면 당장 관전 포인트는 헌법재판소장 임명과 12월19~20일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여부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31일로 다음 달 초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면 시기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9명의 헌법 재판관 가운데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역시 내년 3월까지로, 탄핵심판이 길어지면 황 총리가 이 재판관의 후임도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황 총리가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을 '현상 유지'로 묶어둔다면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남은 7명이 탄핵심판에 대한 심리를 해야 하고, 박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려면 이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이 탄핵심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일본에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도 권한 대행 자격으로 참석할 지 여부도 외교 당국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제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직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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