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병안' 논의했던 국민연금 핵심 3인에게 물어보니…
여론과 소액주주들 합병 압도적 지지
국민연금, 반대했더라면 '역적' 몰렸을 것
홍완선 본부장, 찬성쪽으로 회의 몰지 않아
내부서 과반수 결정 나오면 외부에 안맡겨
[ 좌동욱 기자 ]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해 7월10일 서울 논현동 본사에서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건에 대한 ‘찬성’ 입장을 결정했다. 표결을 행사하는 투자위원회 위원 12명과 배석자 11명 등 총 23명이 참석해 8 대 4로 찬성 결의가 이뤄졌다. 이날 결과에 대해 검찰은 국민연금이 정부 또는 삼성그룹의 외압이나 청탁을 받은 혐의를 두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 과정에는 특정 결론(찬성)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나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핵심 운용역 3명과 이뤄진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재용 부회장 왜 만났나
▷투자위원회 개최 사흘 전날인 7월7일에 국민연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을 만난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업 가치는 기업을 경영하는 핵심 경영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 때문에 중요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핵심 경영진을 면담하는 것이 글로벌 관행이다. 해외 다른 연기금들도 똑같다. 국민연금(11.2%)보다 훨씬 적은 0.8%의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었던 네덜란드 공적연금(APG) 등 해외 연기금들도 주주총회에 앞서 대부분 이 부회장을 면담했다. 오히려 이 부회장과 미팅을 하지 않는 것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어기는 행위다.
▷국민연금에선 누가 참석했나.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현 한양대 특훈교수), 한정수 전 주식운용실장(현 건설근로자공제회 자산운용실장), 채준규 리서치팀장, 정재영 책임투자팀장 등 4명이다. 삼성 측의 은밀한 로비를 받는 회동이었다면 이렇게 많이 나갔겠는가.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
국민연금은 주주로서 대략 세 가지를 요청했다. 첫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 대 0.35) 변경, 둘째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 제고 방안, 셋째 사외이사 역할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이다.
▷삼성 측의 답변은.
합병 비율 변경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법률 검토를 해본 결과 어렵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제일모직 주주들이 경영진에 대해 배임 혐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어떤 의견을 제시했나.
합병이 성사되면 제일모직의 바이오 사업을 앞으로 반도체, 휴대폰처럼 키우겠다는 중장기 경영 전략을 제시했다. 합병 이후 시너지 효과 등으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가 오르면 국민연금에도 이득이 된다는 논리였다.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역할 강화 등에도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면담 내용은 당시 투자위원회에 제출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분석’ 보고서에도 포함됐다.
▷과거 국내 다른 기업 경영진과도 만난 전례가 있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 약 한 달 전에 개최됐던 SK와 SK C&C 합병 당시에도 양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의견을 들었다. 다만 당시 수감 중이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만나지 못했다.
반론 기회 충분했나
▷투자위원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위원장인 홍 전 본부장이 찬성 의견으로 회의를 몰아갔다는 의혹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특정 결론(찬성)을 염두에 두고 회의를 하지 않았다. 당시 회의 참석자만 23명이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같은 답을 할 것이다. 최근엔 국회에 당시 회의 속기록과 양사 합병에 대한 분석 보고서도 제출했다. 이 문서를 읽어보면 당시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본지 11월23일자 A10면 참조
▷회의가 공정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우선 토론이 3시간 넘게 이뤄졌다. 홍 전 본부장은 합병 반대에 대한 발언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다. 토론 자체가 안건 통과를 위한 형식적인 요식행위가 아니었다. 안건과 함께 부의된 47쪽짜리 보고서를 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기술돼 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한 상황도 고려됐나.
당시 여론은 국민연금이 한국의 간판 기업을 공격하던 엘리엇을 지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사실 국민연금 내부적으로는 합병안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꽤 높다고 예상했다. 개인 주주들이 22%에 달했기 때문이다. 통상 개인 주주들의 주총 참석률은 1~2%에 그친다. 삼성 경영진이 노력해도 5% 정도에 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12%가 참석해서 찬성표를 몰아줬다. 소액주주들의 찬성표가 3%만 덜 나왔어도 합병안은 부결됐을 것이다. 그만큼 개인투자자들이 지지를 해 준 것이다. 만일 국민연금이 반대해 합병이 무산됐더라면 국민연금은 투기자본에 발판을 놓아준 ‘역적’으로 몰렸을 것이다.
▷검찰은 홍 전 본부장이 정부나 삼성 측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홍 전 본부장은 “청탁과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혹여나 압력이나 청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투표권을 가진 12명 중 1명에 불과하다.
회의방식 적절했나
▷당시 삼성은 합병안 성사를 위해 계열사 직원들을 총가동했다. 개별 위원들도 로비 대상이었다는 루머가 파다하다.
민감한 결정을 앞두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삼성 계열사 고위 경영진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인사권자인 홍 전 본부장 의사에 반하는 투표를 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나.
당시 12명의 위원 중 3명은 표결 기권, 1명은 중립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4명은 홍 전 본부장 재임 기간 중 인사상 불이익을 전혀 받지 않았다.
▷민간 전문위원회인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안건을 넘기지 않으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과거엔 의결권 담당 부서인 책임투자팀이 △찬성 △반대 △전문위 회부 등에 대한 1차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내부 투자위원들이 대부분 실무 부서 의견을 따른다. 이런 관행은 위원들이 찬반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결권행사 지침(내부 규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투표한 것이다. 준법감시실과의 협의, 위원들의 사전 동의도 거쳤다.
▷의결권행사전문위로 안건을 넘기는 기준은 어떻게 돼 있나.
의결권행사 지침 8조2항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가 찬성 또는 반대를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행사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찬성이나 반대를 과반수 찬성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면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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