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새 장편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 양병훈 기자 ] 건물 키보다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광장을 장식한다. 길거리는 일찍부터 축제 분위기다. 여느 유럽 국가와 다르지 않은 폴란드의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폴란드에는 한 가지 특이한 풍습이 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 자리에 빈 접시와 빈 의자를 하나 갖다놓는 것. ‘올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 마련해두는 여분의 자리다. 폴란드 사람들의 온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소설가 김다은 씨(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사진)의 새 장편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작가 펴냄)는 이 ‘빈자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김씨는 지난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이 풍습을 알게 됐다. 묵고 있던 숙소 주인이 성탄절 이브 저녁 식사에 초대해 김씨는 실제로 이 ‘빈자리’에 앉았다. 당시 받았던 감동이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계기였다.
작품 속의 폴란드 할머니 아네타는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한 아이를 계속 기다린다. 할머니의 가족은 그것이 50년 동안 국가적인 비밀이었던 프와코비체 양육원과 관련된 것임을 알게 된다. 아네타가 기다리는 아이는 젊은 시절 이 양육원에서 보육 교사로 일하며 보살핀 소녀다. 프와코비체 양육원은 폴란드가 ‘사회주의 형제애’를 강조하기 위해 북한의 전쟁고아를 데려다 보살핀 곳으로 1950년대에 실존했다.
한국 여성 라아는 ‘폐허가 된 영혼을 재건하겠다’며 폴란드에 온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괴로워하다가 한 묘지에서 우연히 아네타를 만난다. 라아는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아네타의 집에 성탄 전야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서 갔다가 ‘빈 의자’의 의미를 알게 된다. 라아를 보고 기다리던 소녀가 돌아왔다고 믿는 아네타는 당시 그 소녀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연을 털어놓는다.
김씨는 전쟁으로 도시의 85%가 파괴된 바르샤바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들려준다. 고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게 그들이 영혼을 재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숱한 전쟁으로 여지없이 파괴된 도시를 균열 하나까지도 재건해 놓은 풍경은 충분한 볼거리였다. 하지만 내가 매료된 것은 그런 풍경 뒤에서 비쳐나는 묘한 빛이었다. 처음에는 그 빛의 정체가 뭔지 몰랐고, 어느 순간부터 그 빛이 폴란드인의 영혼의 뜰에서 퍼져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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