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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과잉 선택'의 시대…우리는 대신 골라주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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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마이클 바스카 지음 / 최윤영 옮김 / 예문아카이브 / 432쪽 / 1만8000원

산업혁명 후 200년간 호황 지속
삶의 모든 영역서 정보 넘쳐
수용 가능한 선택범위 초월

선별·배치 같은 큐레이션 요소
글로벌 기업들 앞다퉈 활용
'덜어내는 것'이 핵심가치로



[ 송태형 기자 ]
“후세 사람들은 초고도 산업 사회의 딜레마인 ‘과잉 선택’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1970년 출간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토플러의 예견은 적중했다.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 상품이 넘쳐나는 일상에서 과잉 선택은 흔한 풍경이 됐다. 토플러는 과도한 선택과 자극이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곧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으로 반응한다고 했다.

인간은 선택의 기쁨을 누릴 때 행복해지지만, 광범위한 선택 범위는 인간을 압도한다.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면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사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가 명명한 ‘선택의 역설’이다.

마이클 바스카 옥스퍼드대 브룩스국제센터 연구원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에 압도되는 과잉 현상을 타개할 대응책으로 큐레이션을 주목한다. 쓸모없는 것들을 과감히 덜어 내 선택지를 좁혀 주는 큐레이션이야말로 ‘과잉 사회’의 강력한 돌파구라는 것이다.

그는 《큐레이션》에서 역사학과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큐레이션의 의미를 논한다. 큐레이션의 개념과 효과, 경제·문화·산업분야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고, 큐레이팅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과 기업, 개인의 사례를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각종 정보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넘쳐나는 과잉 사회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간 지속된 ‘긴 호황’의 결과다. 긴 호황은 데이터, 부채, 먹거리 등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그저 ‘더 많이’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이제 과잉 사회에서 가치의 중심은 ‘덜어내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 관련 기업들은 이런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다. 모든 것이 과적된 상황에선 정리하는 기술, 즉 큐레이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인터넷 영역에서처럼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황에서 큐레이션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큐레이션은 ‘보살피다, 돌보다’란 의미를 가진 라틴어 큐라레에서 유래했다. 역사적으로 사회 기반 시설을 책임지는 관리를 큐레이터라고 칭했다. 큐레이션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수많은 수집품과 예술품 중 목적을 가지고 분류하고, 작품의 진가를 판단해 선별한 뒤 이야기를 풀어 내기 위해 배치하는 작업을 일컫는 용어로 진화한다.

영국 박물관은 모두 800만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이 중 1%인 8만점만 선별했고, 이를 다시 80개 주제로 나눠 전시해 관람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선별과 배치를 통해 덜어내는 작업은 정제와 단순화, 맥락 부여의 과정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웹은 기존 큐레이터 체제를 그대로 복제했다. 정보와 글, 영상, 영화, 도서, 뉴스 등 인터넷에 오르는 무수한 콘텐츠를 과감히 덜어내고 새롭게 조합해 가치를 재창출하는 데 성공한 웹 기반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대규모 지지 세력과 광고비를 확보하고 세계적인 위상까지 얻었다.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대표적인 온라인 큐레이션 기업들이다.

저자는 큐레이션을 광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다.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가려내는 기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큐레이션은 미술관과 박물관, 인터넷을 넘어 금융, 제조, 유통, 여행, 음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큐레이션은 전문성과 깊은 이해,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대상을 보존하고 보살피는 원래의 의미가 더해지면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를 얻는 ‘좋은 큐레이션’으로 인정받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주의 깊게 선별하고, 문제를 간추리고, 이해의 폭을 넓히거나 구입·탐색·인지의 기회를 확대하고, 특정 요소의 효과를 최대로 끌어내는 것. 저자는 이 모두가 큐레이션 영역이라고 규정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큐레이션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 활동의 주요한 영역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사회가 전체적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과잉 현상에 직면하고 큐레이션의 가치와 중요성은 더 확대된다는 점이다.

그는 “선별과 배치, 정제, 진열 등 큐레이션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은 오늘날 과잉의 시대를 돌파하는 핵심적인 원리”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한층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디지털 경제와 산업의 주요한 흐름인 큐레이션 현상을 폭넓고 깊이 있게 통찰한다. 세상을 큐레이터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책이다. 다만 저자가 다루는 주제와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게 읽힌다. 저자에 따르면 책의 편집도 큐레이션이다. 큐레이션이 보다 세심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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