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였던 박찬종·고건 등 중도하차
2001년 지지율 1~2%였던 노무현, 본선서 '대세론' 이회창 꺾고 승리
지난 대선 1년 전엔 안철수가 1위…현재는 반기문·문재인 양강구도
[ 홍영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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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6대 대선 땐 1년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이었던 노무현 후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해 초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40~50%대를 기록한 반면 노 후보는 1~2%대에 불과했다. 노 후보는 3월 국민경선제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며 치고 올라왔고, 4월 말에는 6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이 후보가 다시 역전하면서 새천년민주당 내에선 후보 교체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노 후보가 2.3%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17대 대선(2007년 12월) 1년 반 전인 2006년 6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지지도에서 3위였다. 당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와 고건 후보가 1위 자리를 놓고 다퉜다. 이후 고 후보는 소극적인 행보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실패한 총리 기용 인사’ 발언 등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 등을 내놓으며 치고 올라가 2007년 대부분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올랐고, 그 추세를 끝까지 이어갔다.
18대 대선 땐 선거 1년 반 전까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선두를 달리며 대세론을 형성했다. 2011년 하반기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 불면서 역전됐다. 2012년 대부분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가 박 후보에게 앞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됐지만, 박 후보가 확고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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