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Z내 바닷모래 채취놓고 수산-건설업계 '10년 해묵은 갈등'
수산업계 "어장훼손 심각"
"EEZ는 고등어·멸치 산란장, 10년간 바다 파헤쳐…어민 생존권 위협"
건설업계 "골재파동 우려"
"모래 채취 중단땐 부산·경남지역 건설공사 올스톱될 것"
[ 오형주 기자 ]
요즘 남해안에서는 때아닌 ‘바닷모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등 건설공사에 쓰는 바닷모래 채취를 둘러싸고 수산업계와 건설업계가 맞붙은 것이다. 수산업계는 바닷모래 채취로 어장이 파괴됐다며 ‘채취 불가’를 외치고 있다. 반면 건설업계에선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되면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레미콘 가격이 대폭 상승하는 등 ‘골재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10년 넘은 ‘모래 파동’
급기야 전국 어민들은 17일 정부세종청사 주차장을 가득 메운 채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한수총)와 수협 上談?등 주도로 열린 시위에는 어민 3000여명(수산업계 주장)이 모였다. 이들은 ‘138만 수산산업인 생존권 사수 총궐기대회’ 깃발을 들고 ‘바닷모래 채취 전면 금지’ 등의 구호를 외쳤다.
건설사들의 모래 채취를 둘러싼 갈등은 10년도 넘었다. 2004년 인천 옹진군에서 어민들의 반대로 바닷모래 채취가 일시 중단되면서 ‘수도권 모래파동’이 벌어졌다. 당시 수도권 일대에서 공사가 대거 지연되고 건축비가 상승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빚어지자 정부는 안정적인 모래 공급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바닷모래 채취다. EEZ는 육지와 멀어 환경오염 논란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수산업법상 어업 피해 보상 대상도 아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정부는 EEZ에 있으면서도 수심이 얕아 채굴이 쉬운 경남 통영시 남쪽 70㎞ 해역(남해)과 전북 군산시 서쪽 90㎞ 해역(서해)을 각각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하고 민간사업자에게 채취를 맡겼다. 이후 올해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골재 채취 허가를 연장해왔다.
어민들, 모래 채취 반대 시위
어민들은 그간 EEZ 모래 채취에 줄곧 반대 의견을 개진해왔다. 2001년에는 부산신항 건설에 쓸 모래를 인근 EEZ에서 채취하는 것에 대해 반발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어민들은 “남해 EEZ는 매가리, 고등어, 멸치 등의 이동경로와 산란장”이라며 “모래 채취로 인한 물고기 산란·서식 장소 훼손이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어민들은 또 “그동안 얼마나 바다를 파헤쳤는지 물고기들이 일본 쪽 EEZ로 옮겨갔다”며 “우리로서는 생존권이 걸린 절박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해수부는 이런 어민 의견을 반영해 지난 8월 말 남해 EEZ 골재 채취 연장을 위한 국토부의 ‘해역이용영향평가 협의’ 신청을 거부했다.
정부, 채취 연말까지 임시 연장
해수부의 거부에 건설업계와 국토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당장 9월1일부터 모래 채취가 중단되면서 닷새 만에 바닷모래 가격이 47%나 상승했다. 울산항 오일허브, 부산신항 조성공사 등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마저 줄줄이 ‘올스톱’될 위기에 처했다는 게 국토부 주장이다.
남해 EEZ 모래는 부산·경남·울산 등지 공사 현장에서 대부분 쓰이고 있다. 남해 EEZ에서 모래 채취가 중단되면 ‘골재 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두 부처는 남해 EEZ 바닷모래 채취를 연말까지만 임시 연장하기로 지난달 12일 합의했다. 공동으로 어업피해조사 재검토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연말까지 어민 피해 여부를 재검증하기로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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