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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리포트] 옷 라인 잡아줘…몸에 손 닿았다고 성추행범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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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2주년…불편한 진실
(5) 갑질 '단골손님' 블랙컨슈머

말투가 왜 그래…직원 무릎 꿇리고 상품권 받아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결국엔 돈 요구…빵 포장에 크림 묻었다고 "찾아와 사과해"
"보험금 지급 느리다" 차 몰고 지점 돌진…음식에 벌레 넣어 협박한 2인조 '덜미'
악성민원 넘쳐 진상고객 전담 '마크맨'도



[ 정인설 기자 ] 잘 차려 입은 남녀 두 명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눈에 잘 안 띄는 창가 자리를 원한다. 언뜻 부부로 보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주위를 살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 지 10분 후 대뜸 “국에서 돌이 나왔는데 어떡할 거예요”라고 소리친다. 식당은 다른 고객 때문에 일단 음식값 6만원을 받지 않는 것으로 무마했다. 예외없이 다음날 정신적 피해 운운하며 더 큰 금액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내가 의사이고 조카가 검사인데 위자료 안 주면 각오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1주일 뒤 두 사람은 다른 지역 식당에서 같은 자작극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물질 넣고 피해보상하라는 블랙컨슈머

부당한 이익을 얻기 위해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 絹湧?대한민국 어디서나 ‘고객은 왕’이라는 점을 충분히 활용한다. 금과옥조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다.

이 철칙에 따라 일단 매장 직원들이 쩔쩔매도록 소란부터 피운다. 초보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패스트푸드점이 단골 장소다. 본인 실수로 콜라를 휴대폰에 쏟고는 “왜 콜라잔을 이렇게 만들었느냐”며 휴대폰 값에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 “규정상 그럴 수 없다”고 하자 “니가 그러니까 그런 데서 콜라나 팔고 있는 거야”라고 악담을 했다.


백화점에서 블랙컨슈머 상습 출몰 지역은 구두나 의류 매장이다. 점원과 고객의 신체 접촉이 잦아서다. 십중팔구 여자 고객은 남자 직원을 찾는다. 새 하이힐을 신어보며 본인 발이나 다리를 만지게 한 뒤 성추행을 당했다며 피해 배상을 요구한다.

편의점에서는 유통기한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이가 많다. 13일 경찰에 적발된 울산 2인조 블랙컨슈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편의점에 들어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진열대 맨 안쪽으로 숨긴 뒤 다음날 해당 편의점에 다시 가 그 빵을 사는 수법을 썼다. 그런 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먹고 배탈이 났다”며 9개 편의점 주인을 협박해 98만원을 뜯어내다 덜미가 잡혔다. 이들은 모두 일용직 노동자였다. 지난달 경찰의 갑질 횡포 집중 단속 결과를 보면 블랙컨슈머형 갑질 가해자 중 무직(23.4%)과 일용직 근로자(6.6%)가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불친절하다며 신용카드 내던진 진상 고객

금융회사에서는 반복형 블랙컨슈머가 판을 친다. 보험금 지급이 늦었으니 보상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54회에 걸쳐 보험사 콜센터에 욕을 퍼붓는가 하면, 금융감독원에 16회 민원을 냈지만 돌아오는 게 없자 보험사 지점을 차로 돌진한 민원인도 있었다.

‘진상 고객’도 적지 않다. 식당에 혼자 온 고객을 2인석으로 안내하면 “왜 날 무시하느냐”고 화내기도 한다. 서빙 여직원에게 “말투가 왜 그 모양이냐”며 무릎 꿇리고 상품권을 받아내기도 한다. 시킨 대로 크림 빵을 썰어줬더니 귀가 중 포장비닐에 크림이 묻었다며 “환불해달라. 우리 집에 와 직접 사과하라”고 한 갑질 고객도 있다. 매장 앞에 불법 주차했다 과태료가 나오자 “계산이 늦어 일어난 일이니 과태료와 위자료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병원 응급실에선 접수 시점부터 고성이 오간다. “내가 이 병원을 10년간 이용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고 소리친다. 민원이 먹히지 않으면 계산할 때 소심한 복수를 한다. 신용카드를 땅바닥에 던지며 “니가 주워서 계산해”라고 소리치는 식이다.

소비자 갑질에 마냥 손놓고 있을 수 없는 기업들은 전담 마크맨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객만족센터장이나 고객팀장 등으로 불리는 사람이 그들이다. 한 백화점 고객센터장은 “계산대 앞에 ‘폭언을 삼갑시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정도가 심한 상습범에겐 무관용 원칙으로 대하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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